청백리는 아니지만 나름 유능한 경찰로 인정받는 최철기 반장(황정민 분)은 경찰대 출신이 아니라는 이유로 매번 승진에서 탈락한다. 그런 그에게 엄청난 기회가 찾아왔으니 바로 사회적 이슈가 된 성폭행범을 잡아낸다면 승진을 시켜 주겠다는 제의가 들어온 것이다. 그런데 이게 녹록치만은 않은 것이 진범이라 추정되는 인물이 다른 경찰에게 총을 맞아 죽어버린 상황. 경찰로서는 청와대에서까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이 사건의 해결(?)을 위해 다른 범인을 만들어내야 했고 그 미션이 최반장에게 떨어진 것이다. 최반장은 이 '부당거래'를 승낙하고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해 깡패 건설업자인 '장석구'(유해진 분)와 또다른 '부당거래'를 한다.
이 영화는 원칙을 어기고 '부당거래'를 한 사람의 종말을 보여주는 영화이다. 그렇다고 해서 단순히 정의가 살아 숨쉬네 하는 분위기는 결코 아니다. 오히려 끝없이 거짓을 만들어 내야 하고 그 거짓들이 눈덩이 처럼 불어나 최초의 거짓말을 덮친다는 측면에서 마더구스의 시와 같은 오싹함을 불어 넣는다. 전체적인 톤앤매너는 작년 히트한 '나쁜놈들 전성시대'를 떠올리게 한다.
처음 한국성인 영화를 본 것이 아마 고등학교 때 본 '세상 밖으로'로 기억이 난다. 그때 가장 충격을 받았던 것이 브라운관 안에서 들려오는 욕설이었다. 아마 첫 장면이 문성근이 차에서 내리면서 내뱉는 '아 X발 X라 춥네'였다. 그때 얼마나 충격을 받았던지.. 이 영화는 욕설로 가득차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나 검사역할을 맡은 류승범의 대사빨은 기묘한 쾌감마저 느끼게 한다. 한국영화에서 과도한 욕설이 어제오늘 일은 아니지만 단순히 욕설이 아닌 대사 하나하나에 담긴 복합적인 자조는 블랙 웃음과 함게 영화에 대한 몰입도를 한껏 높인다. 그런 대사를 소화하는데 있어서 류승범만한 인물도 흔치 않다.
'열심히들 산다. 정말 열심히들 살어'
#2018년 가을, OCN을 통해 다시 본 부당거래에서는 황정민의 갈등이 훨씬 더 잘 느껴진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한차례의 실수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그 실수조차 안해도 될 일이란 걸 알았을 때라는 건.. 신기한 건 생각보다 저런 경험이 누구에게나 있을터다. 물론 사람이 죽어나갈 정도로 사건이 커지는 일은 없지만 실제로 우발적인 범죄 대다수가 오해에서 비롯됨을 생각해보면 아주 말도 안되는 건 아니다. 그래서 극중에서 황정민이 처한 상황이 단순한 인과응보로 치부하기에는 마음이 아팠다.
(이하 스포일러)
영화는 뒤로 갈 수록 어떻게 정리가 될지 알 수 엇을 정도로 복마전으로 치닫는다. 그러나 마지막 최철기는 진실을 은폐하기 위해 최후의 거짓말로서 아끼는 후배를 죽이게 된다. 여기에 감독이 원한 한가지의 징벌이 더 기다리고 있는데, 바로 억지로 잡아넣은 범인이 진짜 성폭행범이라는 사실이다. 모파상의 '진주목걸이'가 떠오르는 순간이다. 허무함과 안타까움. 고소함을 동반한 카타르시스가 몰려온다. 그 후 부하 형사들이 진실을 알고 최철기 형사를 죽이게 되니 그야말로 모든 고통과 치욕을 안고 죽어버린다.
정말 류승완 감독 다운 결말이다. 과거에는 이런 느낌의 결말이 꽤 많았었는데, 이런것도 복고인가? 이미 많은 소설과 영화에서 차용되었던 소재들을 류승완이 엮음으로서 새로운 재미를 창출해 냈다. 역시 한국영화는 조연이 빛날때 반짝반짝 하는 듯 하다.
PS. 류승범이 황정민에게 숟가락 올려놓았다는 대사는 정말이지 빵 터졌었다.
부당거래 (2010)
The Unjust
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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