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일생의 절반을 일을 하면서 보낸다. 그렇기에 어떤 일을 하느냐 하는 것은 인생의 절반을 어떻게 보내느냐와도 같은 말이다. 어떤 일을 선택해야 하는지, 자기가 진정 좋아하는 일을 찾으라는 식의 글들은 어디든지 널려 있다. 그러나 여기 알랭 드 보통의 이 글들은 일을 바라보는 시각 그 자체를 가지고 접근한다. 알랭드 보통식의 글쓰기. 그것은 무생물들에 대한 관찰에서 일으키는 감성적인 요소들과 삶에 대한 강한 통찰이 아닐까.
총 10개의 챕터로 구성된 이 에세이는 일이란 무엇이고 어떤 감성을 가지고 있는가. 하는 질문에 대해 몇몇 직업군을 통해 대답하는 글이다. 제목처럼, 일이라고 하는 무생물적이고 차가워보이는 행위에서 감성적인 본질과 가치를 제시한다. 무슨 소리냐고? 심야.. 보통 새벽 1시부터 3시 정도를 우리는 심야라 부른다. 이 시간에 테헤란로나 여의도, 시청주변을 걸어본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공감할 거다. 그 밤에 간혹 켜져 있는 불빛들을 보면서 저사람들은 도대체 무슨일을 하는 걸까라는 생각.. 해본적 있지 않은가. 나같은 경우에는 백수시절 저렇게 건물이 많은데 내자리 하나 없나 하는 생각을 가지기도 했었다. 그렇게 무생물적인 요소에서 뽑아내는 감성 쓰나미. 삶에 대한 통찰이 늘 그의 글에는 담겨져 있다. 그의 책에 함께 실리는 흑백사진 같이 담백하면서 매끈한 글들은 언제나 그렇지만 늘 매력적이다. 낮선 도시를 여행하는 것처럼..
특히 이 책에는 한국과 관련한 두가지의 콘텐츠1가 등장하는데 알랭 드 보통이 얼마나 한국에 관심이 많은지를 역설하는 바다.
#1. 화물선 관찰하기
어느날 보통은 화물선을 바라보다가 한가지 의문을 가진다. 저 화물선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 것일까. 저 여정은 누굴 위한 것이며 어떤 의미를 가진 일인 것인가. 이 질문에서 이 책은 출발한다.
나는 부두에 서 있던 사람들에게서 영감을 받아 현대 일터의 지성과 특수성, 아름다움과 두려움을 노래해 보기로 마음먹었다. 특히 일이 우리에게 사랑과 더불어 삶의 의미의 주요한 원천을 제공할 수 있다는 그 특별한 주장을 주의 깊게 들여다 볼 생각이다.
#2. 물류
첫번째 선택한 일이 농부나 과학자가 아니라 물류라고 하는 것은 의미심장한 일이다. 물류란 어떤 재화를 옮기는 과정을 의미한다. 글로벌 경제라는 미명 아래 이제는 언제 어느때라도 신선한 과일을 먹을 수 있다. 그것이 우리나라에서 나지 않는 것이라 할 지라도. 보통은 그중에 참치를 선택한다. 대양 바깥에서 잡히는 그 거대한 물고기가 잡힌지 60시간만에 식탁위로 올라가는 이 놀라운 일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보통은 참치를 포획하기부터 식탁에 오르기까지 그 여정을 함게 한다. 그의 글만큼인나 담백한 흑백 스틸사진과 함께.
트럭은 이른 아침에 브리스틀 교외의 한 알루미늄 창고 뒤편에 멈추고, 참치는 이 창고를 통해 슈퍼마켓으로 들어간다. 인도양의 빛 없는 소금물에서 처음 들어올려지고 나서 52시간 뒤의 일이다.
#3. 비스킷 공장
물류가 생물의 이동이라는 주제를 제3의 눈으로 객관성있게 바라보는 작업이었다면 비스킷 공장에서는 무의미와 유의미의 차이를 관찰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비스킷을 먹기는 하지만 그 공장의 사람들이 구체적으로 어떤일을 하는지는 모른다. 알랭 드 보통 역시 마찬가지였고. 보통은 비스킷 공장의 담당자와 미팅을 하고 비스킷공장의 임원은 자신의 일의 중요성을 보통에게 설명한다. 알랭 드 보통이 보기에는 우스운 일이 아닐 수 밖에 없다. 그의 생각에 비스킷 공장이 돈을 많이 버는 것을 제외하고는 경박한 일이라 생각한다. 산업에서 나오는 물질적인 풍요는 존중하지만 진부한 노동에 억지로 가치를 부여하는 일은 아름답지 않기 때문이다. 비스킷을 만드는 것이 가치가 없는게 아니라 완전히 분업화 되어 자신이 무슨 일을 하지도 못하는 일을 지속하는 것이 의미없는 것이다.
선천적으로 균형과 비례를 의식하는 피조물인 우리는 '스위트 비스킷 브랜드 감독 코디네이터' 같은 직책에는 뭔가 뒤틀린 것이 있다고 여기며, 빌프레도 파레토의 주장이 아무리 논리적이고 명민하다 해도, 아직 아무도 설득력 있는 이름을 붙이지 모산 다른 원리가 무시되고 더 섬세한 인간 법칙이 침해를 받고 있다고 느낄 수 밖에 없다.
#4. 직업상담
네번째 소개되는 직업은 직업상담이라는 직업이다. 다른 사람의 직업을 상담하는 직업이라는 점에서 역설적이기도 한 이 직업은 아직 우리나라에는 많지 않지만 외국에서는 나름 전문직으로 구분되는 모양이다. 하지만 한국이나 외국이나 직업을 선택하기 위해 컨설팅 받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은 모양으로 대부분 교육이나 강연으로 생계를 꾸려 나간다. 알랭 드 보통은 시먼스라는 직업상담사와 몇주간 함께 하며 이 글을 채워나갔다. 보통은 그와 동행한 몇주동안 성공학 강연을 하는 것을 보고 괴로워 했다. '나는 할 수 있다' 따위의 구호를 외쳐서 성공하는 이는 극소수임에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이 진실이라고 착각한다. 직업 상담사 역시 피해자로 그들 스스로가 믿음하에 선동가가 되어 버렸다.
모두가 일과 사랑에서 행복을 발견할 수 있다는 너그러운 부르주아적 자신감 안에 은밀하게 똬리를 틀고 있는 배려없는 잔혹성을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그 두가지에서 절대 충족감을 얻지 못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충족감을 얻는 경우가 극히 드물다는 뜻일 뿐이다. 예외가 규칙으로 잘못 표현될때 우리의 개인적 불행은 삶에 불가피한 측면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 아니라, 특별한 저주처럼 우리를 짓누르게 된다.
#5. 로켓과학
현대과학의 정점이라고 할 수 있는 로켓 과학. 아마 현존하는 모든 기술의 집합체가 바로 이 로켓기술일 것이다. 알랭 드 보통은 이 로켓 발사의 과정을 접하고 나서 그 과학을 실현하는 과학자들에 대해 경외감을 느낀다. 수천년간 인간은 자연에 경외감을 느껴 왔는데 이제 인간이 그 경외감의 대상이 되는 시대가 되었다는 사실에 우울함을 느낀다.
과학이 제공하는 잠재력을 존중하면서도 그 혜택이 좁은 틀 안에 갇혀 곤혹스러울 정도로 제한적일 수도 있다는 점 또한 인식해야 한다는 것이다.
#6. 그림
확실히 예술을 하는 인간들은 서로를 이해하고 보듬어주는 경향이 있다. 이 책에 나오는 모든 직업이 보통에게 있어서 비판과 관찰의 대상이 되지만 그림을 그리는 이번 챕터의 주인공만큼은 보통에게 깨달음을 주는 이로 등장한다. 떡갈나무 그림만을 반복해서 그리는 테일러라는 화가를 통해 그가 하고 있는 작업의 가치와 어려움. 의미를 우리에게 대변한다.
"물은 본적 있어요?" 테일러가 묻는다. "제대로 본적이 있냐는 거죠? 전에 한번 본적이 없는 것처럼"
#7. 송전공학
혹시 송전탑을 자세히 본적이 있는가. 나는 이 책에서 처음 알았다. 송전탑의 모양들은 백과사전이 필요할 정도로 제각각이라는 점을. 보통은 송전탑 전문가인 그의 사촌을 따라서 송전탑 여행을 시작한다. 맨 처음 참치를 따라 물류의 여행을 한 것처럼 송전탑을 따라 전기의 여행을 한 것이다. 그 여행은 순탄치도 않고 의미도 없어 보였지만 현대적인 문명중에서 소외되어진 최첨단 기술을 따라간다는 특이점이 있었다. 아무도 몰라주지만 의미없는 여행을 보여준다.
그들 가운데 누구도 쟂빛 강철 철탑이 풍경을 가로질러 저 머나먼 남서부 해안에서 달려온다는 사실을 생각할 필요가 없게 해 주는 것이다.
#8. 회계
드디어 나왔다. 회계. 사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직업이라고 하면 과학자, 연예인, 정치인, 농부 등 명쾌한 직업을 떠올린다. 그러나 현대인의 삶에서 많은 이들이 이 회계 업무에 종사하고 있다는 사실은 종종 간과한다. 사실 회계원이라는 직업은 그 이름만큼이나 차가워 보이고 보통에 따르면 그건 어느정도 사실인 듯하다. 모든 언어를 숫자로만 이야기하는 그들에 대해 보통은 분노를 넘어 연민을 느낀다. 이 챕터에서 보통은 회계 뿐만이 아닌 사무실의 문명 그 자체를 이야기한다.
그는 아무 할 일 없이 방에 혼자 있어본지 10년이 넘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내 권태가 연민으로 바뀌는 것을 느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연민을 느낄 구석이라고는 정말이지 하나도 없을 것이라고 여기던 사람에게.
#9. 창업자 정신
일자리 창출의 원동력은 창업과 도전정신이라고.. 누가 말했던가?!. 영궁 역시 실업난 해소를 위해 창업을 장려하는 것은 똑같나보다. 보통은 창업투자 박람회에 참석하여 그곳에 참석한 사람들을 관찰한다. 대부분이 별것 아닌 아이디어를 가지고 사업을 하겠다고 꽉 막힌 발명가들이다. 주변은 돌아보지 않은채 오로지 자신의 발견과 연구에만 파붇혀 있는 사람들. 보통은 그들 사이에서 혼란을 느낀다.
#10. 항공산업
여행을 좋아하는 알랭 드 보통에게는 특별한 경험이었으리라. 우연찮은 기회로 항공 박람회에 참여한 보통은 항공산업과 관련한 여러가지를 포함해 박람회장 안에서 벌어지는 재미있는 일들을 경험한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비행기들의 무덤을 방문하기도 한다. 폐기 처분된 비행기들이 모여 있는 곳. 그런곳이 있을까 싶은데 진짜 존재한다. 아무튼 이 두가지의 극과 극의 장소를 경험하면서 보통은 일에 대한 정의와 의미를 내린다.
우리 자신을 우주의 중심으로 보고 현재를 역사의 정점으로 보는 것, 코 앞에 닥친 회의가 엄청나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 "오전 11시에서 오전 11:15까지 커피를 마시며 휴식"이라고 적힌 회의 일정을 꾸역구역 소화해 나아가는 것, 부주의하고 탐욕스럽게 행동하다가 전투에서 산화해 버리는 것- 어쩌면 이 모든 것이 결국은 생활의 지혜일지도 모른다.
라면서...
일의 기쁨과 슬픔
- 한국에서 발간된 송전탑 백과사전과 드라마 내이름은 김삼순이 등장한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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