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률 작가가 만들어 낸 <트루베니아 세계관>을 배경으로 하는 이 소설은 메인 주인공인 데이몬이 다녀간 후, 그 이후를 그리고 있다. 특히나 하프 오우거라는 주인공을 내세우고 있는데 이는 김정률 특유의 '아름다움에 대한 의도적 거부'를 그대로 계승하고 있다.
전체적인 맥락이나 이야기의 전개, 문체등을 보면 김정률이라는 작가의 특징이 무척이나 아리송함을 알 수 있다. 캐릭터와 상황 설정에 있어 상당히 고어 하고 잔인한 느낌을 지니고 있는 반면 문체나 구성, 맥락에 있어서는 무척이나 모범생적이기 때문이다. 특별히 기복이 없이 꾸준하다는 점은 장점이지만 이야기가 길어질 수록 지루하게 느껴지는 단점도 공존한다. 구성상에서 어디선가 본 얘기 같다는 점도 있고... (사실 캐릭터를 제외하고는 한번쯤 접해 본 듯한 이야기의 연속이다).
그러나 그 단점을 커버하는 최대 장점이 있으니 바로 다양한 전술, 전략의 소개와 사실관계의 당위성 구축이다. 김정률 작가는 개인과 개인의 대결을 보여줌에 있어서는 평이하지만 집단과 집단이 부딪히는 전쟁은 그럴싸하게 만들어내는 재주꾼이다. 특히 시스테인이라는 전략 요충지에서 벌어지는 3년전쟁은 꽤나 실감나게 그려내 이 소설 최고의 씬이라 할 수 있다. 이것보다 더 좋은 점은 당위성의 구축이다. 사실 트루베니아 세계관은 어느 판타지에서나 통용되는 기초적인 세계이다. 중세 유럽에 D&D를 짬뽕시킨 이 세계는 많은 독자들이 익숙하다는 장점과 식상하다는 단점이 동시에 존재하는 곳인데, 작가는 당위성을 만들어 내서 이 식상한 곳을 살아 숨쉬게 한다. 예를 들면 연합군 측이 기사단이 강하다고 한다면 어째서 그런지 역사적인 이유를 만들어 내 당위성1을 부여하는 것이다. 이런 작업은 세계관을 탄탄하게 만들고 독자에게 작가가 창조한 세계를 현실감 있게 만드는 장점이 있다.
이 책은 인간과 오우거의 혼혈인 레온을 주인공으로 하고 있다. 이 레온은 흉측한 외모 덕에 인간과 잘 어울리지 못하고 전쟁에 휘말려 버린다. 곡예단을 거쳐 용병단에 머물게 되지만 그의 괴력을 이용하려는 인간들과 신분제에 젖어있는 귀조들로 인해 레온의 인생은 엉망이 되어 간다. 그 과정에서 주 적국이라 할 수 있는 헬프레인의 황제의 암살을 시도하고, 도망자가 된다. 데이몬을 통해 기연을 얻고 트루베니아 최고의 강자가 된 후에 아르카디아로 건너가는 것으로 이 책은 끝이 난다. (어이없는 결말이기는 하지만 2부가 이어진다.)
전작인 데이몬 시리즈를 읽지 않았음에도 큰 무리없이 글을 따라 갈 수 있었는데, 전작을 읽은 사람에게는 더욱이나 반가울 만한 요소들을 많이 깔아 놓았다. 데이몬이나 드래곤들, 엘프족의 수장 등은 아마 전작을 구성했던 주인공들인것 같다. 무난한 설정에 곳곳 빛나는 장면들이 숨어있어 나쁘지 않았다. 다만, 헬프레인 황제의 정체라던지 데이몬의 등장 등은 급작스러운 면이 있어 잠깐 잠깐 당황스럽게 만들기도 한다.
PS. 주인공만 본다면, 김정률 작가가 침울하고 어두운 느낌일 것 같지만 개인적으로는 모범생 타입일 것 같다.
하프블러드 1
- 이 경우 봉건제와 신분제가 그 이유가 되었다. 신분상승을 위해 차남과 서자들이 엄청난 노력을 해야 했다는 이유로 그럴싸 하게 만들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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