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유명작가 정이현과 세계적인 작가 알랭드 보통이 공동 작업 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상당히 기대를 불러 일으켰던 이 책은 알랭 드 보통의 <한 남자>편과 정이현의 <연인들>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일반적으로 이런 식의 공동작업을 하는 경우 스토리 상의 연결점이 최소한 1개 정도는 있게 마련이며 이 기획을 준비한 출판사 측에서도 처음에는 그것을 노렸을 것이라 짐작된다.1 어떤 과정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나온 결과물은 당초의 기획, 그리고 소비자의 성급하지만 당연한 기대와는 떨어진 두 권의 책이 나와 버렸다. 각각의 책은 작가 개인이 속해있는 사회에서 일반적으로 벌어지는 사랑을, 그 사랑의 본질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나가지만 공동기획이라는 점을 느낄 수 있는 면은 전혀 없다. 각각의 책으로 출판 되었어도 충분히 이슈가 되었을 만한 수준의 좋은 소설 두 편이지만 어찌 되었건 맨 뒤편의 대담(그것도 서면인데다, 전문이 아니다.)정도로만 공동 기획을 한 소설이란 걸 알 수 있으니 이 부분이 강력한 구매요인이었던 이에게는 무지하게 실망스러울 수도 있겠다. 이런 류의 소설을 접할 때 드는 약간의 당혹스러움 -어느 권을 먼저 읽어야 할 것인가 - 이 불필요해진 건 조금의 다행이다.2
먼저 정이현의 소설 <연인들>편을 살펴보자. 준호와 민아라는 지극히 평범한 남녀가 연인이 되어가고 이별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는 이 소설은 지극히 통속적인 소재를 다루고 있고 구태의연한 전개에서 한발자국도 움직이지 않고 있다. 이 책의 가치는 그 과정상의 디테일에 있다. 남녀가 만나고 헤어진다는 지극히도 일반적인 스토리 속에서 등장하는 개개인의 역사와 우연의 장면들. 한국 특유의 성에 대한 보수적인 감정과 현 세대가 가지고 있는 연애와 결혼관. 장애물에 이르기까지 누구나 한번쯤 접해 봤을 만한 이야기들을 너무나 사실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그래서 이 소설은 재미있고 감정이입이 되면서, 서늘하다. 그들은 가슴 터질 것 같은 사랑이라고 착각하기도 했고, 어느정도 가능성 있는 우연에 대해 운명이라는 감정을 느끼기도 했다. 그리고 별건 아닌 일로 멀어져 갔고 그 감정은 회복되지 않았다. 단순히 인간과 인간만의 문제가 아니라 그들의 이별 뒤에는 한국에서만 벌어질 수 있는 결혼에 대한 씁슬한 사회상이 담겨져 있다.
보통의 글은 정이현의 것보다는 딱딱하고 철학적이다. 정이현의 <연인들>이 보통 연인들의 만남과 헤어짐을 그렸다면 보통의 <한 남자>는 그 과정을 극복하고 결혼이라는 첫 번째 항구에 무사히 정박한 배. 그 배의 남성을 주인공으로 결혼생활 그 자체를 그려내고 있다. 주인공인 벤은 아이가 둘 있고 작은 사업체를 경영하고 있는 40대 초반의 남성이다. 그는 아내에 대한 감정에 대한 불확신과, 가정에 대한 사랑, 그리고 이루지 못한 섹스에 대한 갈등에 빠져 있는 인물이다. 보통의 자전적 인물이기도 한 벤을 통해 작가는 결혼이라는 제도의 불완전성을 이야기 한다. 그리고 사랑하는 동반자와 섹스를 즐길 수 없는 아이러니에 대해 설명하고, 또한 가정이라는 요소를 위해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덧붙인다.
벤은 별것 아닌 일 - 치약을 남겨놓는 일, 화장실 사용법, 낮선 장소에서 길 물어보기 등 - 로라도 아내와 1달에 한번은 크게 싸우면서 젊은 여성과 한 차례의 바람을 경험한 남자이다. 그러나 벤은 누구보다 가정을 사랑하며 그의 가정을 지키고 싶어 한다. 그래서 벤은 가족들과 함께 40살을 맞는 기념으로 꿈꿔 왔던 일을 한다. 헬리콥터를 타면서 벤은 가족과 아내, 결혼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한다.
벤의 논리를 정리하자면 사랑과 가족, 섹스는 결코 공존할 수가 없으며 현대 사회에서 이런 난관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사랑하는 법에 대한 학습이 필요하다. 우리는 낭만적 사랑을 원하지만 그것은 어른이 아기에게 줄 수 있는 사랑일 뿐이고 성인과 성인 사이에서의 낭만적 사랑은 불가능하다는 점을 서로가 인지하고 있을 때 그 사랑과 결혼은 양립할 수 있다.
현대의 결혼은 섹스, 사랑, 가족이라는 세가지 욕구를 조화시킬 수 있는 무대로 정의 되었다. 그러나 사실 이들은 각각 다른 것들에 위협이 되고 있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은 그와 섹스하는 능력을 위태롭게 한다. 특별히 사랑하진 않지만 매력적이라 느끼는 누군가와 섹스하는 것은 사랑하지만 더 이상 흥분되지 않는 사람과의 관계를 위태롭게 한다. 아이를 갖는 것은 사랑과 섹스 모두를 위태롭게 한다. 그리고 사랑과 섹스에만 몰두하는 것은 다음 세대의 육체와 정신의 안녕을 위태롭게 한다.(한 남자, 165P)
보통의 논리가 상당히 마음에 와 닿고 수긍이 가는 부분이 많지만, 정이현의 것처럼 서늘하고 날카롭게 와 닿지는 않는다. 아마도 사랑이라는 개인적인 감정에는 사회와 문화적인 차이가 상당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에 쉬이 이해하기는 어려우리라. 장편이긴 하지만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두 편의 사랑 분석기를 읽으면서 나와 아내에 대해 생각했다. <연인들>을 읽으면서 와이프와 만났던 처음을 떠올렸고 기억에 남아있던 수많은 데이트 코스를 다시 한번 생각했다. <한남자>를 읽으면서는 아직은 경험치 못한, 그러나 주변 결혼 선배들로부터는 받고 있는 경고를 떠올리게 되었다. 다만 아직은 도래하지 않았고 경험하지 않았기에 추상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기는 하지만, 벤처럼 용기를 가지고 노르웨이의 시인이 노래한 영웅 서사시 만큼이나 노력을 해야 얻을 수 있는 평범한 삶에 대해 집중과 노력, 고찰을 지속한다면 틀림없이 사랑의 승리자로 죽을 수 있을 것이다.
사랑의 기초 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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