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달 쯤 전인가. 교보문고를 거닐다 <이수만 평전>이라는 두터운 책을 보고 빵 터졌던 기억이 난다. 아무리 성공을 했어도 이수만이라는 인물이 평전씩이나 되는 거창한 것을 낸다는 것에 대한 조소였으리라. 이수만이라는 인물이 후대헤 어찌 평가받을런지는 몰라도 평전이라는 타이틀이 붙는 자서전을 쓸만큼은 아니라는 것이 나의 주관적인 판단이었기 때문에 그 두터운 책에 웃음으로 화답한 것이다. 그 책의 출간 저변에는 많은 판매부수 보다는 이수만 사장의 명예욕과 나름대로 성공에 대한 기록을 남기고 싶은 마음 등이 깔려 있을 것이다. 그 이전에도 많은 기업인들과 정치인들은 자신의 기록을 남기는 것을 좋아한다. 요즘은 좀 뜸하긴 하지만 대기업의 창시자들은 모두 나름의 기록을 자서전이라는 형태를 통해 담았고 종종 정치인들 역시 그런 기록을 남기는 것 같다. 얼마전 임기를 마친 서규용 전 농림부 장관도 그들의 뒤를 이었다.
퇴임한지 1개월도 채 지나지 않아 발간된 이 책은 서규용이라는 개인의 발자취라기 보다는 그의 임기동안 농림부가 한 일에 대부분의 초점이 맞춰져 있다. 먼저 서규용이라는 개인에 대한 평가는 잠시 접어두자. 이 사람은 적어도 30년이 넘도록 농림 관련 분야의 관료로 활동을 한 전문가이고, 나름 실무 공무원에서 장관까지 신분상승을 한 엘리트 관료이기도 하지만 장관이었을 때의 평가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으니 말이다. 팩트만 이야기 한다면 나름 뚝심 있다고 평가를 받기는 했지만, FTA 정책과 미국 광우병 발발시 대책 등에 있어서는 아직도 호불호가 갈릴 수 있는 인물이다.
내용상의 좋고 나쁨을 떠나 이 자서전의 책으로서만의 가치를 살펴본다면 정말이지 최악의 자서전이 아닐까 생각된다. 초반 도입부의 성장기 부분은 서규용 장관이 직접 기술하고 있는데 솔직히 이 부분에서 나름의 자기자랑을 탓하고 싶지는 않다. 자서전이라는게 원래 얼굴에 금칠하기 위해서 쓰는 것이고 카톨릭신자가 불상에 기도를 했더니 천운인지 비가 왔더라하는 샤머니즘스러운 영웅주의 역시 납득할 수 있는 정도의 잘난 척이다. 문제가 되는 부분은 책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본문편이다. 지식융합원의 이철규 부원장이라는 사람이 서규용 장관과 대담을 하는 형식을 빌리고 있는 식인데, 이 지식융합원이라는 단체의 정체가 불분명하다. 일단 홈페이지 검색이 안되고 이철규라는 인물의 소개 역시 이 책에 빠져 있다. 그건 그렇다 치더라도 질문이나 글을 끌어가는 방식이 전형적인 출판용역인의 자세이다. 질문과 답변의 구도가 마치 농림부의 보도자료를 보는 듯하고 전혀 날카롭지 않은 질문과 전혀 신선하지 않은 대답의 반복이다. 서규용 전 장관의 말에 따르면 본인은 현장 실용주의자라고는 하지만 어디까지나 공무원의 시각에서 그렇다는 거고 이 책에서의 현장성이란 현장가서 회의를 한 내용밖에 없는 것이다.
이 책의 가장 큰 문제점은 대담자인 이철규의 멘트들이다. 대담 중간 중간에 본인의 생각이랍시고 괄호를 치고는 그 안에 혼잣말 등을 담았는데 그 내용이 가관이다. 본인은 현장성을 전달한다 생각하는 모양인데 그야말로 아부의 현재진행형이다. 장관님 놀라워요 뿌잉뿌잉 수준의 독백이 이어지고, 장관의 답변에 본인의 무식을 자책하는 글까지 있는 등 한 기관의 부원장이라고는 도저히 믿기 어려운 처신의 반복이다. 그러다보니 책으로 인해 농림정책의 신뢰가 오기는 커녕 알아듣지도 못하겠고 믿음도 안가는 책이 되어 버린다. 장관님이 진짜로 이렇게 답변을 했다면 할 말이 없지만(절대로 그렇진 않았을 것 같기는 하다) 여기 나온 답변들은 담당 사무관들이 작성한 정책사업 Q&A를 보는 것 처럼 루즈하고 생기가 없다.
개인에 대한 평을 할만큼 이분을 많이 알고 있는 것도 아니고, 농림정책에 대한 관심도 높지 못하다. 그러나 단언컨데, 이 자서전은 절대로 이렇게 쓰여지면 안되는 자서전의 좋은 예가 될 것이다.
PS. 책 바로가기를 달려 했더니 Daum에 링크 코너도 없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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