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명의 남녀가 나오는 이 소설은 줄거리 상으로 봤을 땐 사랑과 전쟁에나 나올만 한 소재를 가지고 있다. 13년간 좋아했던 여자와 결혼하는 동수. 그 여자 선영. 선영을 예전에 사귀었던 진우. 진우와 동수의 묘한 갈등과 그 안에서 선영의 처신 등등...
여기에 직접적인 사랑타령에서 회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노래 ‘얄미운 사랑’과 부케의 꺾어진 꽃줄기가 등장한다. 그리고 작가의 톡톡튀는 문장력만 더해지면, 통속에서 조금 앞서나간 연애소설로 태어나게 되겠지만, 김연수의 작품은 그보다 두세발자국 더 앞으로 나아간다. 어찌보면 철지난 사랑타령일 것만 같은 이 소설에서는 80년대 마지막 학번인 작가세대의 시대론이 등장한다. 운동은 했지만 목적성 없었던 이들과 나이가 들고나서 오는 괴리감과 망연자실이 오히려 광수와 진우의 갈등보다 더 깊숙하게 다가오는 건, 여기서 변하네 안변하네 하고 투닥거리는 사랑이라는 개념이 어쩌면 이념. 가치관과 동의이음어가 아닌가 싶기 때문이다. 특히나 소설이 흘러가는데 있어 어색하기 그지 없는 진우의 입바른 척을 궂이 계속해서 집어넣은 데에는 사랑이 자본주의의 발명품이라는 대사를 꼭 집어넣고 싶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자본주의를 계속굴러가게 만들 노동력의 확보. 그것이 사랑의 전신이라는 끔찍한 이야기. 하지만 김연수는 다시 사랑이라는 가치관에 한가지 의미를 더 부여한다. 사랑을 속삭이는 것이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 역할을 한다는 것. 여기까지 오면 이 사랑이 어떤 사랑인 것인지 어느정도 확실하다. 80년대 마지막 학번의 대상없는 운동. 그 이념이 현재에 이르러 무너지는 것에 대한 자위와 환상을 사랑에서 찾아낸 것이다.
내가 찾아낸 소설위 뒤편은 여기까지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 소설이 무겁거나 날카롭거나 한 것은 아니다. 적당히 해학적이면서 군데 군데 장치된 설정은 약간의 유치함을 포함하여 통통 튀는 즐거움을 안겨준다. 농익은 언어적 유희를 비롯해 작가의 지적 깊이가 드러나는 비유들은 이 소설에 적당한 무게추를 달아주기 때문에 지나친 통속에서도 한걸음 비켜서 있다.
사랑이라니 선영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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