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수레의 책읽기

[서부전선 이상없다] 전쟁을 일으키는 것과 수행하는 것의 차이.

슬슬살살 2013. 6. 8. 13:24

1. 어떤 소설인가.

제목에서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듯이 1929년 출판된 이 소설은 전쟁, 정확히는 1차 세계대전의 한 편린을 다루고 있다. 무려 90년 가까이 전 세계적으로 사랑을 받는 이유는 이 소설이 단순히 전쟁과 반전, 평화적인 메세지를 담는 차원을 넘어 전쟁이라는 역사적 맨홀에 던져진 개인이 가지게 되는 정신적인 피폐를 날카롭게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인 레마르크는 실제로 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었고 그 경험이 고스란히 녹아있어 전쟁을 겪지 않은 세대들도 전장의 참혹함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 

 

2. 전우

낮선 환경, 그것도 평이하지 않고 고통스러운 환경으로의 내팽겨진 개인은 엄청난 심리적 붕괴에 직면하게 된다. 그야말로 멘붕이란 말은 이런데 쓰는 것인데, 병역을 마친 인원이라면 충분히 공감할 것이다. 그곳에서의 심리적 혼란이라는 것은 단순히 먹여주고, 입혀주고, 재워주는 것이 만족된다고 해서 해결 되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이런 심리적 고통은 동일한 조건을 가지고 있는 동료로 인해 경감될 수 있다. 인간이 겪을 수 있는 가장 최악의 상태라 할 수 있는 전장 한복판에서의 전우라는 것은 그야말로 가족과 형제보다도 우선순위에 존재한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전쟁에서의 전우가 회사 동료와 비슷한 수준이라 생각했지만, 실제로 전쟁터에서의 전우란 존재는 빗발치는 총알을 뚫고 달려나갈 정도인 것이다. 더 충격적인 것은 그정도로 소중한 동료임에도 정작 죽음을 맞는 동료 앞에서는 한없이 담담하다. 이 아이러니는 전쟁이라는 특수한 상황이 초래한 것으로 죽음 외에는 삶의 이유를 찾을 수 없는 전쟁 특유의 성질 때문이다. 주인공 바우머는 독일군의 병사로 학교 선생의 꼬임에 빠져 반 친구들과 함께 입대한 병사이다. 3년이라는 전쟁을 겪으면서 많은 전우들이 죽어나가고 그 속에서 개인과 국가의 관계, 전쟁의 원인에 대해 사유한다.

 

 

3. 배고픔

전쟁을 생각하면 총알이 빗발치는 전투를 생각하기 쉽다. 현대전은 어쩐지 모르겠으나, 참호전이 주를 이뤘던 1차 대전은 전쟁터 자체가 삶이었다. 총알이 시시 때때로 진지를 덥치기도 하지만 그 안에서 먹고, 싸고, 자는 일들을 반복하는 집이기도 한 것이다. 당연히 보급은 좋지 않아 후반부로 갈수록 먹을 것을 구하는 것이 싸워서 이기는 것보다 소중한 순간이 온다.

레마르크는 적군으로 설정된 프랑스, 러시아군 역시 똑같은 인간으로 보고, 전쟁의 승패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단순히 독자들은 시간이 흐르면서 직감적으로 밀리고 있구나 하는 것을 느끼게 된다. 어찌 됐건 전쟁터에서의 배고픔은 너무나 당연하면서도 끔찍한 고통이며, 단순히 먹을 것 뿐만이 아니라 장화, 이불, 물 같은 생필품에 대한 부족함도 피곤한 일이다. 레마르크는 이러한 일들을 너무나 담담하게 그려냈는데 실제로 모두가 굶주리는 상황에서의 부족함은 그 안에 있는 개체를 담담하게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상당한 리얼리티가 있다. 

 

4. 부상

동료들이 하나 둘 죽어가고 있을 때 바우머 역시 부상을 당해 후송된다. 부상자들을 치료하는 야전 병동 역시 하나의 전쟁터이다. 수술을 하면 걸을 수 있음에도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다리를 모조리 잘라내는 군의관들을 누가 탓할 수 있을 것인가. 죽음을 앞둔 이를 버리기 쉽게 미리 시체실과 가까운 병동으로 옮기는 수녀들 역시 전쟁의 희생양일 뿐인 것이다. 우리는 전쟁 중에 후송되어서 병상에 누워있거나 혹은 휴가를 얻어 집에 가는 것이 무지하게 좋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1차대전 때에는 전후방이 따로 없었으며 후방의 삶 역시 전쟁과 다름 없었다. 오히려 총알이 빗발치는 전쟁 한복판이 그곳에서 죽음과 붙어살던 바우머 같은 인물들에게는 안락함을 주는 것이다. 때문에 회복된 바우머가 전방으로 나가게 되는 것이고 그곳에서 전쟁 속의 자아에 대한 의문만을 가진체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다. 한 개인이 그렇게 쓰러져 갔음에도 국가에 보고되는 전쟁보고서에는 한줄만 쓰여있을 뿐이다. '서부전선 이상없음'이라고

 

5. 반전

여기서 반전의 필요성을 의미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많은 이들을 죽음에 넣기 때문에 전쟁은 안된다는 유아적인 논리보다는 한걸음 나아간 이야기가 이 소설 속의 메세지이다. 가장 대표적인 이유는 나라는 존재에 대한 물음이다. 학교를 졸업하지도 않은 상태에서 전쟁터에 나와 죽음만을 겪어온 바우머와 그의 동료들. 평화가 온들 그들이 할 수 있는 건 무엇인가. 오로지 총을 쏘고 먹을걸 구하고, 포탄소리로 피하는 요령만을 숙지해 온 이들이 먼저 제대한 세대와 전후 세대 사이에서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잉여인간이 되는 것 뿐이다. 분명 그들의 인생을 모두 희생했음에도 평화를 두려워해야 하는 딜레마에 빠지는 것이다. 두번째는 전쟁의 의미이다. 순박한 농부의 모습을 하고는 배고픔을 이겨내고 있는 러시아 포로들과 후반부 주인공과 같은 엄폐물 안에서 죽어가는 프랑스 적군이자 인쇄공인 제라르 뒤발. 이 모두가 국가를 지킨다는 명분아래 이같이 참혹한 짓거리를 하고 있는데 정작 국가가 무엇인지에 대한 의문을 던진다. 따라서 레마르크는 단순한 반전이 아니라, 이 전쟁을 일으킨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와의 대립과 기성세대에 대한 분노를 표출하고 있는 것이다. 

 

   


서부 전선 이상 없다

저자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 지음
출판사
열린책들 | 2009-11-30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서부 전선 이상 없다』. 고전들을 젊고 새로운 얼굴로 재구성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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