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수레의 책읽기

[최후의 가족] 사랑하는 사람을 구하려면 스스로 자립하라.

슬슬살살 2013. 7. 31. 22:09

히키코모리인 아들 히데키, 가장으로서 해고라는 절대절명의 위기에 봉착한 아버지 히데요시, 아들 히데키의 치료와 남편에 대한 순종적인 여성이지만 13살 연하의 목수와 바람을 피우고 있는 엄마 아키코, 그리고 넷 중에서는 가장 정상적이지만, 세명의 가족 구성원들 사이에서 자신의 진로를 고민하고 있는 여동생 도모미.

 

결코 정상이라 할 수 없는 가족 구성원이지만, 딱히 비정상적이지도 않다. 무라카미 류는 이 가족 구성원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가족의 해체를 이야기 하고자 한다. 대가족에서 소가족으로, 핵가족으로, 이제는 1인 가족 시대에 접어든 요즘. 무라카미의 이런 주장이 마냥 허황되어보이지만은 않은 이유다.

 

이들 가족은 가족이라는 이름 하에서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스스로 상처를 입는다. 히키코모리인 아들로 인해 상처받는 부모들은 물론이거니와 가족을 부양해야 한다는 부담감은 가장인 히데요시를 상처준다. 남편보다 더 편안한 사람이 있다는 사실은 아키코를 행복하게 해 주지만 반면 상처를 주기도 한다. 가장 어린 도모미는 스스로의 진로를 스스로 결정하기까지 번민을 거듭하며 그 원인 역시 가족이다.

 

물론 가족이라는 존재가 이들처럼 서로를 상처주기만 하는 것은 아니지만, 삶에 있어 가장 상처를 많이 받는 원인도 가족이기도 하다. 무라카미 류는 가족의 해체를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의미의 가족을 이야기 하고자 한다. 종신고용이 사라지는 현대의 사회에서 내가 곧 가족이라는 사실은 스스로를 힘들게만 할 뿐이다. 오히려 스스로의 일은 스스로가 하는 것이 모든 가족이 행복해 지는 길이다.

 

가까운 사람의 자립은 그 곁에 있는 사람을 구원합니다.혼자서 살아갈 수 있게 되면 말이죠.

그것만이 가까운 사람을 구할 수 있는 길이지요. (본문중에서)

 

이 가족은 히키코모리인 히데키 때문에 갈등에 빠진다. 그렇다면 이 가족의 위기는 오롯이 히데키의 몫인걸까? 아니다. 히데키가 방에 처박히게 된 원인 뒤에는 강압적인 아버지가 존재한다. 그렇다면 그 아버지가 원인인가? 이것 역시 아니다. 히데요시는 그 시대의 가장으로서 열심히 돈을 벌어오고 그에 상응하는 대가(존중)를 원했을 뿐이다.

 

이 가족의 갈등은 어이없이도 히데키가 옆집여자를 살펴보기 시작하면서 해소되기 시작한다. 남편에게 폭력을 당하는 옆집 여인에게 동질감을 느껴서였는지 히데키는 용감하게도 방을 나서 사회로 들어간다. 히데요시 역시 해고되고 나서 진정한 자유를 느끼며, 그 뒤에는 자립을 결심한 도모미와 아키코가 있다.

 

가족은 해체되었지만 그들은 여전히 가족이며, 보다 더 자유롭다. 이들의 모습이 궁극적인 미래의 가족이라, 혹은 가야 할 방향이라 믿는 것은 작가의 망상일 뿐인가. 재미를 위해 극단적으로 표현된 부분이 있지만, 궁극적인 가족의 모습은 저런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서로를 구속하지 않으면서 스스로 자립하는것. 가정에 기대지 않고 자신을 사랑하는 것.

 

전통적 의미로서의 가정이 옳은 시절은 지나가 버린 것이다.

가족의 최후가 아니다. 최후의 가족은 이미 다가왔다.

 


최후의 가족

저자
무라카미 류 지음
출판사
이상북스 | 2013-06-27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가족 해체의 시대, 가족을 묻는다!새로운 번역, 새로운 시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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