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로스.. 타나토스.. 에로스.. 타나토스.. 에로스.. 타나토스..
에로스는 삶을 의미하고, 타나토스는 죽음을 의미한다.
에로스가 삶에 대한 찬미라면 타나토스는 자기파괴다.
무라카미 류가 타나토스를 이야기한다.
항상 침울하고 염세적인 작가의 스타일이 극으로 치달은 작품이다. 양억관이라는 걸출한 번역가의 손에 걸리지 않았더라면 거의 제임스 조이스 수준의 난해함을 보일 뻔 했다. 그렇다 하더라도 시간의 흐름에 따른 서사에 익숙한 나에게는 쉽지 않은 읽기였음은 확실하다. 더군다나 섹스에 관한 낮뜨거운 지문들이 2~3장마다 등장함에도 몰입도가 떨어진 건 이 작품이 작가의 의식이 투영된 날것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세상에 이렇게 집중할 수 없는 야함이라니....
쿠바에 살고 있는 '나'는 어느날 공항으로부터 통역의뢰를 받는다. 일본인 불법입국자가 있는데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고.. 통역을 자처한 '나'는 횡설수설하는 '레이코'의 신원을 보증하고 집에 데려온다. 여배우라는 '레이코'의 직업에 끌려서이기도 하면서 횡설수설하는 그녀의 이야기에 관심이 동해서이기도 하다. '착란을 정리하기 위해' 쿠바에 온 레이코는 야자키라는 남자에 관한 이야기를 털어 놓는다. 둘은 단순한 관계가 아니다. 새대스트와 매조히스트의 관계. 변태. 자기학대와 타인학대에 의해 기쁨과 사랑을 확인하는 존재다. 야자키라는 남자의 사육에 길들여지면서 탈출하고, 탈출해서 착란에 걸린채 다시 그를 찾아다니는 여인이 레이코이다. 레이코는 처음 만난 '나'에게 그와 레이코, 게이코라는 또 다른 파트너에 대한 이야기를 털어 놓는다.
레이코의 독백이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타나토스'는 착란에 걸린 여인의 독백을 그대로 옮겨 놓은양 정리되지않고, 중언부언하며, 맥락 없는 대사의 연속이다. 따라서 모든 문장은 끊어지지 않고 문법에 맞지 않게 이어져 내려간다. 당연히 이해라는 차원에서 읽기보다는 그야말로 미친여자의 소리를 듣는 차원에서 접근해야만 한다. 그 듣기에서 레이코의 감정변화를 읽을 수 있기 때문에 타나토스의 읽기는 그간의 독서개념을 다시 뒤집는 방법이 될 수도 있겠다. 이 글에서 새디스트와 매조히스트의 자기파괴에 대한 정당화를 듣다보면 이런 방식의 사랑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공감이 아닌 이해의 수준이다. 예전의 O이야기가 떠오르기도 하지만 그보다 훨씬 '쿠바적'이다.
PS. 이 책의 출판사가 이상북스다. 책을 다 읽고 나서 깜짝 놀랐다. 이상을 읽는 것 같았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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