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바쁘기도 바빴고, 고른 책도 두껍기는 했지만 근 한달 간을 읽었다. 평소 독서량이 적지 않았음에도 10여년 전 발간 된 <교양>은 그 두께만큼이나 완독이 쉽지 않았다. 책의 난이도가 높다기 보다는 너무 방대한 분야를 읽어야 하는 부담이 더 컸다.
<교양>은 집에 두기에 딱 좋은 책이다. 제목이나 디자인, 두께 모두 서가에 꽂아두었을 때 간지가 줄줄 흐르는.. 2002년 제대 이후에 고스트스테이션에서 신해철이 이 책을 소개했던게 아직까지도 기억이 난다. 본인도 멋있어 보이려 샀다가 라면국물이 튀어 엄청 짜증이 났더라는 그런 시시껄렁한 이야기였는데.. 아무튼 이 책은 도서관에서 빌려본 이들보다 왠지 산 사람이 많을 것 같은 책이다.
궂이 이런 얘기를 서두에 쓴 이유는 이 책의 목적과 통하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제목처럼 교양있는 사람이 가져야 할 지식으로 채워져 있다. 물론 유럽인의 시각에서 저술한지라 유럽의 역사, 유럽의 문학, 미술, 음악, 철학을 중심으로 다루고 있어 변방인 한국인의 교양과는 살~짝 거리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궁극적인 이 책의 목적은 교양있는 사람들간의 어울림의 확장이다. 책보다 TV와 게임에 열중하는 현 세대에 던지는 마지막 교양인의 충고와도 같은 것이다. 역사와 문화를 논하고, 클래식을 이야기하는 교양인의 문화를 이어가고픈 로맨티스트의 욕망이기도 하다.
지식편과 능력편 두 파트로 구분되어 있으며 두 편을 통틀어서 유럽의 역사분야가 압도적으로 많다. 역사와 다름 없이 방대할 만 한 문학이나 미술 분야의 양에 비하면 엄청난 차이인데 이는 역사가 교양인의 기본이라는 저자의 의중이 묻어나 있기도 하고 또, 가장 자신 있는 분야여서이기도 하다. 유럽의 방대한 역사를 막힘없이 술술 풀어나가던 저자가 음악과 미술 편은 마치 논문처럼 써내려갔다. 덕분에 그 부분에 이르러서 이해가 꼬이기 시작한다.
지식편이 기본적으로 알아야 할 지식을 정리해 놓았다면 2부인 능력편에서는 실질적인 교양인이 되기 위한 자기계발서와 같은 장이다. 여기에서는 어떤 책을 읽어야 하는지, 왜 교양인이 책을 읽어야 하는지 등을 다룬다. 영상매체를 통해서는 인간의 겉만 볼 수 있지만 오롯이 글에 이르러서야 내면을 경험할 수 있다는 말은 가슴에 와 닿는다. 교양있는 사람처럼 보이는 전략을 다루고 있는 마지막 장은 의외인데 교양있는 척을 해야 하는 이유가 잘 드러나 있다.
교양은 인간의 상호 이해를 즐겁게 해 주는 의사소통의 양식이다.
인간간의 의사소통을 풍요롭게 하는 게임에서 교양을 흉내내는 일은 게임을 재밌게 풀어나가기 위한 방편이다.
PS. 단점이 있다면 독일 중심의 사고방식이 녹아있다는 점. 역사에 비해 미술과 음악분야는 백과사전식 서술이어서 졸립다는 점이 있겠다.
또한 언어와 관련한 분야는 궂이 읽지 않아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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