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타니아 표류전설>은 전작에서 계속 떡밥처럼 던졌던 크리스타니아 대륙을 배경으로 쓰여진 일종의 외전이다. 대륙의 모습은 많은 이들의 예상과 상당히 다르긴 하지만 무척이나 매력적이다.
판이 활약했던 때보다 300년 후를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신수라는 독특한 세계관을 갖추고 있다. 신이 동물의 몸을 빌려 각 민족들을 거느린다는 설정이 중심이 되다보니 화려한 문명과 마법, 전쟁은 볼 수 없고 운명에 복종하는 정글 원주민들만 있다. 한마디로 아바타 판타지 버전의 느낌이다. 중세를 배경으로 하는 대부분의 판타지와는 차별화가 되지만, 긴 이야기 속 재료가 원주민밖에 없어 지루하다.
로도스에서 탈출한 한 민족이 바다와 절벽으로 고립된 크리스타니아 한쪽 귀퉁이에 자리를 잡고 국가 다낭을 세운지 벌써 300년이 흘렀다. 급작스런 지진으로 한 마을의 절벽이 무너지면서 크리스타니아로 통하는 길이 생기자 모험을 꿈꾸는 레일즈와 그의 동료들이 신대륙으로 넘어간다. 신대륙은 신수라는 토템들이 지배하는 대륙인데, 각 부족마다의 수호신수가 있어 그들을 지배해 오고 있다. 또한 일정한 주기가 반복되는 이른바 주기의 법칙이 크리스타니아의 모든 민족을 지배하고 있는데 이 때문에 크리스타니아의 모든 부족은 변화와 발전보다는 안정과 반복을 추구하고 있다.
레일즈가 도착한 크리스타니아는 그런 주기를 지키려는 부족들과 변화를 받아들이려는 부족들 간의 전쟁이 한창이다. 변화를 꾀하려는 부족에는 전작에서 로도스를 탈출한 마모군의 후예들도 포진되어 있는데 그들은 암흑민족을 자처하며 지배의 신수왕 바르바스와 협력하여 정복전쟁의 선봉에 선다. 레일즈 일행은 주기의 신수왕 페네스의 대리인인 마리스와 함께 주기를 지키려는 편에 서서 전쟁을 치러나간다. <로도스도 전기> 300년 후의 이야기이지만 전혀 다른 이야기이다. 오랜 삶을 사는 디트릿트 정도는 잠깐 등장해줄법도 하지만 기대는 무너진다. 중세가 아닌 원주민 느낌이 강한 정글 판타지라는 점이 상당히 특이한데 야성미와 원초적인 매력은 있지만 거기까지다. 글로서의 재미보다는 담고 있는 메시지가 강렬한데 피아의 선과 악의 경계를 두지 않는다거나, 결말을 명확히 처리하지 않는 다거나 하는 구성은 지금의 눈으로 보기에도 상당히 세련됐다.
“사람의 인생은 짧지만 살아가는 동안에 끝없이 성장한다. 티없는 갓난아기로 세상에 태어나 죽을 때까지 도대체 얼마나 많은 변화를 겪는가. 그것이야말로 인간의 강인함을 여실히 보여준다.”
주인공이 변화를 반대하고 지키려는 집단에 소속되는 것이 상당히 신선(?)하다. 이 소설은 그런 점에서부터 다르다. 일반적인 가치관을 주인공이 수행해 나가는 것이 아니라, 난데없는 출발지로부터 발을 내딛다보니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주인공의 적은 모호해진다. 이 작품에서 레일즈는 내면의 공포, 변화를 거부하는 아군과도 싸워야 한다. 당연히 일반적인 대륙통일 미션보다는 훨씬 복합적인 생각을 하게 만든다. 이렇게 <크리스타니아 표류전설>은 대륙을 질타하는 호쾌한 대리만족용 소설이 아니라 인간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깃든 작품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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