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하필 사마리아인인가.
‘강도들이 그의 옷을 벗기고 상처를 입혀 거의 죽게 된 것을 버려두고 갔다. 마침 한 제사장이 그 길로 내려 가다가 그 사람을 보고 피해 지나갔다. 또 레위인도 그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되 어떤 사마리아인은 그 곳에 이르러 그 사람을 보고 측은한 마음이 들어 가까이 가서 그 상처에 감람유와 포도주를 붓고 싸맨 후에 자기 말에 태워 여관으로 데리고 가서 돌봐주었다. 다음날 그는 두 데나리온을 꺼내어 여관주인에게 주며 '이 사람을 돌봐주시오. 비용이 더 들면 내가 돌아오는 길에 갚겠소'라고 말했다".
(신약성서 누가복음 10장 30-33절)
성경에 나오는 일화다. 위정자들의 위선을 이야기할 때 주로 드는 사례인데 장하준은 이 사마리아인의 앞에 Bad라는 수식어를 붙였다. 개발도상국의 경제발전을 돕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선진국들을 이르는데 이보다 적합한 비유가 있을까.
우리는 속고 있다. 누구에게?
자유라는 말이 주는 묘한 쾌감. 완전무결한 진리로 보이는 이 마법의 키워드 덕에 자유경제의 수많은 부작용은 가려져 있다. 가뜩이나 우리나라의 특수한 상황은 자유경제의 반대편에 서있는 이들에 이념논쟁의 붉은 딱지까지 붙여 버리는 턱에 다른 논의가 진행되기 더더욱 어렵다. 아직 어린 아이가 공장에서 돈을 벌 수 없듯이 산업과 경제도 무작정 경쟁에 노출한다고 해서 발전하는 게 아니다. 또, 농업에 특화되어 있다고 해서 쌀만 생산해서는 절대로 선진국의 반열에 낄 수 없다. 이 자명한 사실을 선진국들 스스로가 부정하고 있는 덕택에 개도국의 경제발전은 더더욱 어렵다. WTO를 강요하는 선진국들의 경우 그 부가 대부분 보호무역으로 성장하였음에도 후발 개도국들에게는 자유무역을 강요한다. 이른바 장하준이 주장하는 Kicking away the ladder . 사다리 걷어차기이다.
자유무역이 성장의 원인인가.
대표적인 보호무역론자인 장하준은 세계화에 관한 진실이라는 주제로 포문을 연다. 선진국의 부가 자유무역으로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역사적 진실을 통해 밝히고 민영화에 대한 무조건적인 찬성을 격파한다. 심지어 오늘날 우리가 맹신하고 있는 저작권과 특허권까지도 어느 정도 느슨해질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며 그 모든 것이 자유경제라는 미명하에 이루어지는 착취로 본다. 하기는 미키마우스의 저작권이 늘어나는 것과 사회 전체적인 문화의 가치상승은 완전히 무관한 이야기이니까. 젊은 시절 빽판을 듣고 자라난 가수들이 K-POP의 토양을 만들었다는 사실을 가지고 본다면 한류 역시 저작권을 무시한 데서 자라난 문화가 아니겠는가. 전문서적의 저작권이 너무나 강하면 개도국은 지식을 축적하고 인적자원을 양성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이는 선진국과의 빈부격차를 더욱 늘리는 역할을 한다. 지금 선진국이라 불리는 국가들은 모두 이러한 상식들을 무시하면서 부를 축적해왔으면서도 후발주자들에게는 그렇지 않다고 말하고 있다.
경제학을 몰라도 쉽게 읽을 수 있다.
이 책은 2004년 발간된 <사다리 걷어차기>와 2010년의 <그들이 말하지 않은 23가지>의 징검다리 역할을 하는 책이다. 단순히 자유무역에 대한 반대입장에 서 있는 정도를 넘어서 자유무역에 대한 맹렬한 비판을 지속해 온 덕에 많은 지지층과 반대파를 얻었으며 자유무역을 옹호하는 이들이 <장하준이 말하지 않은 23가지>라는 반론서를 펴내기도 했지만 무참하게 묻혀 버렸다. 경제학을 몰라도 전혀 무리가 없으면서도 상당한 수준의 경제원리를 파악할 수 있다는 점에서 교양서로서의 인기가 높다.
나쁜 사마리아인인 부자나라들은 개발도상국들에세 자유무역을 권장하면서, 자신들이 모두 완전한 자유무역은 아니더라도 그에 가까운 무역을 하고 있다는 걸 강조한다. 그러나 이것은 마치 여섯 살 먹은 아이를 키우는 부모를 보고, 성공한 어른들은 부모에게 의지하지 않으며, 또한 자립을 했기 때문에 성공한 것이라는 논리를 들이대면서 여섯 살 먹은 그 아이를 일터로 보내라고 충고하는 것과 같다. 성공한 어른들은 성공을 했기 때문에 자립을 한 것이지, 자립을 했기 때문에 성공을 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들은 이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실제로 성공한 사람들은 대부분 어린시절에 부모로부터 경제적, 정서적으로 든든한 지원을 받아온 사람들이다.
자유무역에 반대하는 것이 빨갱이인가.
우루과이라운드, FTA시위, 미국산 소고기 수입. 자유무역 진통의 대표적인 사례들이다. 자유시장주의자 입장에서 이 무역들은 온당한 무역들이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불평등하기 짝이 없다. 실제로 1995년 우루과이라운드 이후 우리 농가의 연소득은 연평균 3.2%씩 낮아졌다. 물론, 다른 분야에서는 이득도 있다 하지만 그 이익이 피해자인 농민들로 흘러들어가지 않는 이상 경제는 극단적인 빈부격차로 흐른다. 자유무역의 반대말은 사회주의나 공산주의가 아니다. 조금만 더 공평한 룰을 갖추도록 하자는 것이 어째서 빨갱이인가.
기울어진 경기장이 더 공정한 게임
스포츠 경기에서 양 측은 동일한 룰과 공평한 경기장에서 경기를 진행해야 한다. 그것을 ‘공평‘이라 부른다. 하지만 경제활동은 스포츠가 아니다. 수많은 구성원들의 생존이 걸려있는 문제를 스포츠와 같이 취급할 수는 없다. 뒤 늦은 출발자에게 더 유리한 조건을 주는 것은 동반자 정신이지, 불공정한 게임이 아니다. 자유라는 이름이 주는 무게가 진실을 호도하고 있다. A매치 축구경기가 아니라 하수보다 높은 페널티를 가지는 아마추어 당구경기가 더 공정한 게임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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