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늘 눈에 보이는 사실 뒤에 반드시 무언가 숨겨져 있을 거라 믿으면서도 정작 눈에 보이는 사실에 현혹된다. 이 포스팅의 제목처럼 삼총사가 네명이라는 사실은 대부분이 알고 있으면서 이상함을 느끼지는 못한다. <뒤마클럽>은 프랑스 최고의 대중 연작가인 알렉상드르 뒤마의 원고로부터 출발하는 이야기이다.
희귀 서적을 찾는 일을 업으로 하고 있는 코르소가 뒤마 전문가 보리스 발칸에게 <삼총사> 42장 <앙주의 포도주>편의 육필원고를 감정해 달라고 들고 오는 장면부터 이야기는 시작한다. 코르소는 동료인 라폰테로부터 앙주의 포도주 감정을 의뢰받은 상황이며 이와는 별도로 저명한 책 수집가로부터 본인의 책을 포함해 세 권만이 남아 있는 악마를 부르는 책 <아홉개의 문>의 진위 여부를 밝혀 달라는 의뢰가 동시에 들어온다. 나머지 두 권과 비교 대조를 위해 포르투갈과 파리여행을 하지만, 의문의 인물의 미행과 함께 나머지 책 주인들의 죽음이 이어진다. 코르소를 뒤쫒는 이는 얼굴에 흉터가 있는 남자로 마치 로쉬포르를 연상시키며, 또 하나의 적 리아나(‘앙주의 포도주‘ 주인의 아내)는 그로부터 원고를 되찾기 위해 밀레이디가 되어 갖은 수단을 다한다. 마치 삼총사가 현세에 펼쳐진 듯한 이상한 상황. 게다가 전개되는 상황은 <아홉개의 문>에 얽힌 비밀 때문으로 보이는데..
뒤마가 천재적인 작가임을 부인할 수는 없지만 그에게는 일종의 스토리작가라고 할 수 있는 오귀스트 마케라는 인물이 있었다. 뒤마의 작품 여러 편. 그 중에서도 <삼총사>의 줄거리 전체를 짜 낸 것이 이 오귀스트 마케다. 그렇다고 해서 뒤마의 명성에 흠집이 가는 것은 아니다. 오귀스트 마케가 스토리와 자료조사를 담당했다면 그것을 하나의 이야기로 만들어내고 훌륭한 문체로 소설을 써 내려간 것은 틀림없는 뒤마이니까. 아무튼 그 뒤마의 비밀로부터 출발하는 이야기는 악마주의와 연결 되면서 독자를 혼돈에 빠트린다.
놀라운 반전의 결말은 아니지만 아차 하는 느낌표를 남기는 마무리이다. 여기서부터는 스포일러.
사실 <앙주의 포도주>와 <아홉개의 문>은 연관성이 없는 우연의 산물이다. 그 우연의 산물을 하나의 사건으로 보이게 하는 방해물이 바로 뒤마라는 존재의 신비성과 현실세계에서 등장해 버린 삼총사 주인공 들이다. 이는 <삼총사>의 등장인물과 대칭되는 현세의 인물들, 뒤마와 오귀스트 마케, 세 권의 <아홉개의 문>에서 뽑아낸 마방진 등 실제와 표상의 구분이 의미 없음을 표현하고 있다.
“우리들, 그러니까 리아나와 니콜라비치 그리고 나, 이렇게 세 사람은 당신에게 무엇을 믿게끔 만들지 않았소. 정작 당신을 그렇게 만든 사람은 우리가 아니라 텅 비어있는 공간을 자신의 생각으로 가득 채운 당신 자신이었어요. 당신은 이번 일을 마치 속임수에 바탕을 둔 소설로 착각했던거요. 하긴 당신은 지나치게 영리한 독자라서 그렇게 될 수 밖에...
“우기지 마시오. 책이 제시하는 정보는 늘 객관적이니까. 물론 일부러 잘못을 유도하고자 하는 어떤 추악한 작가가 그따위 생각을 품을 수도 있을 거요. 하지만 그것조차 틀린 것이 아니오. 잘못이 있다면 그것은 책을 잘못 읽은 당신에게 있소.”
등장인물의 입을 빌려 뒤통수를 맞은 독자를 놀리는 듯한 위트를 건네는 여유까지 보낸다. 이는 <뒤마클럽>이라는 제목부터, 삼총사의 등장인물이 실제로는 4명이었다는 힌트까지 모두 보여 주었음에도 진실에 접근하지 못한 독자들에게 보내는 승자의 세레모니다.
음모론과 팩션, 현대인이 가장 좋아하는 두가지 요소가 녹아있는 데다 인용된 수많은 정보들이 주는 지적 사치를 누릴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지만 흐름이 지나치게 현학적이고, 상당한 제반적 지식 없이는 읽기 어려운 소재의 나열과 불친절한 페레스의 텍스트가 난해하다는 단점이 공존한다.
뒤마클럽
- 저자
- 아르투로 페레스 레베르테 지음
- 출판사
- 시공사 | 2002-02-20 출간
- 카테고리
- 소설
- 책소개
- 210개의 역주, 2년여에 걸친 지난한 번역 작업 『뒤마클럽」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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