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소 1988년부터는 서울에 살았었다. 어린시절 서울랜드의 너구리들과 찍은 사진도 있는 걸 보면, 과천을 안가본 것도 아니다. 심지어 성인이 된 이후에도 최소 세차례는 가 본 듯 한데.. 서울대공원은 처음이다. 서른 다섯이 된 2014년, 서울랜드와 서울대공원이 다른 곳이란 걸 처음 알아 버렸다.
서울대공원이 시에서 운영하는 동물원이라면(그 덕분에 싸다), 서울랜드는 놀이기구가 있는 테마파크다. 그걸 이제서야 알아채다니, 둔하기는 곰과 같구나..
그 동안 가본 동물원은 어린이 대공원과 일산에 있는 주주 동물원, 그리고 비오는 날 방문했던 에버랜드의 사파리 정도인데 이런 식으로 넓게 펼쳐진 동물원은 처음이다. 어린이대공원이 그나마 동물우리가 큰 편인데, 서울대공원에 비하면 새발의 피다. 기본적으로 가장 먼저 만나보는 기린과 원숭이의 우리만 하더라도 엄청난 넓이다. 확실히 동물을 보여주기 위함이라기 보다는 보호와 보전의 목적이 더 커 보이는 우리의 배치다.
자세하게 쓰여진 안내도를 보면 4가지의 코스가 있는데 각각 2시간여가 걸리는 코스다. 일단 기린과 코끼리, 사자와 호랑이를 주로 볼 수 있게 움직여 보는데 온 동물들이 다 자고 있다. 이래서야 인형만도 못한 상황이다. 애초에 채은이에게 보여주기로 했던 하마와 코끼리는 당췌 보이질 않고 가는 우리마다 동물들이 자고 있으니 체면이 말이 아니다.
그래도 떼 한번 부리지 않고 잘 따라 다니는 채은이에게 고맙다. 게다가 뿔달린 동물을 이렇게 흉내내는 애교까지 부리고 있지 않은가. 화창한 날씨, 넓은 통행로, 적당한 가격, 유모차 같은 편의시설까지.. 서울대공원은 동물도 동물이지만 대공원이라는 이름 답게 적당한 가격에 쉴 수 있는 공원의 느낌이 더 강하다. 동물원 곳곳에 펼쳐져 있는 돗자리와 그늘막이 그런 점을 증명하고 있다.
끝까지 올랐더니 맹수사는 수리중이라 호랑이는 구경도 못하게 되어 있고, AI로 조류쪽은 모두 휴업상태다. 그럼에도 놀러온 기분이 가라 앉지 않고 적당한 공원을 산책하는 기분이다. 비싼 돈을 주고 들어오는 전문 동물원이라면 그렇지 않았을 텐데.. 만들어진 취지가 잘 지켜지고 있다. 시민들을 위한 쉼터.. 다행히 어찌어찌 하다보니 그렇게 찾기 힘들었던 코끼리를 발견했다. 꽤나 신기하게 보는 모습이다.
대부분의 동물들이 다 낮잠을 자고 있어서일까.. 손에 쥐어준 반건조오징어 몸통 한쪽을 씹다가 어느덧 채은이도 잠이 들어 버렸다. 그런데 이게 왠일이지? 채은이가 자기 시작하자 거짓말처럼 대공원의 동물들이 깨어난다. 사슴도, 불곰도.. 심지어 제돌이 공연까지도 눈에 보인다. 그러다가 몰래 가족사진을 찍으려는데 깨어나 버린다.. 예민한 것 같으니라고..
다행히 일어나자마자, 캥거루와 코뿔소가 보인다. 아이들이 다 동물을 좋아 한다지만, 철조망에 머리를 디밀고 쳐다보는게 여간 웃긴다. 잠도 잘 잤는지 사진기를 들이대면 포즈도 취해주고.. 이제 슬슬 발동이 걸리나본데.. 미안, 집에 갈 시간이야~~
유원지에 오면 반드시 가져야 할 머스트헤브 아이템.. 바람개비 풍선을 하나 쥐어주고 집으로 향한다. 공원 한바퀴 돌았을 뿐인데 벌써 4시간이 지났다. 규모도 규모지만, 확실히 분위기가 더 좋은 곳이다. 서울대공원은.. 착한 가격은 두말할 것도 없고.. 주차장도 넓고, 일단 공원 자체가 넓어 어린이날 연휴로 몰린 인파에도 콩나물시루처럼 느껴지지는 않는다. 이번이 맛배기라면, 조만간 맹수사가 개장할 때 작전을 잘 세워서 다시 한번 와 봐야겠다. 그때는 채은이가 하루 종일 깨어있을 만한 대책도 가져와야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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