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소개할 책은 공포문학의 아버지 러브크래프트의 전집이다. 이름만 봐서는 로맨틱소설을 쓰는 작가의 블링블링한 필명같아 보이지만 실상은 스티븐킹을 비롯해서 당대 내노라 하는 작가들의 아버지 격인 공포소설 작가다. 판타지계에 J.R.R 톨킨이 있다면 공포문학에는 러브크래프트가 있다.
러브크래프트의 작품은 대부분 단편으로 짧은 것은 A4 1장 정도 분량밖에 안되는 작품도 있다. 남긴 작품도 꽤나 많아서 60여편이 넘는다. 1900년대 초반에 활동하여 작품 대부분은 저작권시효가 소멸된지 오래지만, 한국에서는 한 두 작품을 제외하고 이번 전집을 통해서 소개됐다. 대부분의 작품이 기괴한 세계관 하에서 연결되어지는 데다 기승전결이 있는 일반 소설과는 달리 환상문학에 가까운 측면도 있는데다 난해한 작품 같은 경우는 진짜 광인이 쓴게 아닌가 싶은 작품들도 있다. 어찌 됐건 책의 디자인도 꽤나 멋져서 전집으로서 디자인 가치도 있다. 번역에서는 일본어 중역인지, 매끄럽지 못하거나 앞뒤가 맞지 않는 경우가 있어 곤혹스러울 때도 있지만 심각할 정도는 아니니 그냥 넘어가자. 그래도 이런 비주류작품을 출간해 주는게 어디냐..
전집은 총 4권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나름의 주제를 갖추고 있다. 1권은 크툴루 신화다. 크툴루란 러브크래프트가 창조해 낸 하나의 세계관인데 우주에서 날아온 어느 괴 생명체와 신이 지구 어딘가에 있다는 설정이다. 그 생명체들의 종류도 꽤나 많고 한 종족이 아닌데다 그들끼리도 알력과 다툼이 있는 복잡한 세계관이다. 크툴루 신화야 말로 러브크래프트의 천재성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인데 100여년 전에 우주생명체와 그들의 기원에 대한 가상의 세계를 상상했다는 것만으로도 보통 인물은 아니다. 실제로 이 크툴루 신화들에 쓰여진 소재, 묘사는 현재 오컬트의 기본 틀이 되었다. 외계인이 촉수동물이라는 설정도 여기에서 유래했다. 러브크래프트는 정신병력이 있었는데 작품 곳곳에 정상이 아닌 광기가 보인다. 두 번째 권은 우주적 공포다. 우주적 공포에도 크툴루 신화의 세계관이 일부 녹아 있지만 SF적인 요소가 더 녹아있는 작품들이고, 몇 안되는 중장편이 대부분 여기에 해당된다. 꿈의 세계를 다룬 3권과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소소한 작품들을 모은 4권이 개인적으로는 가장 읽기 어려웠다. 꿈을 다루는 경우에는 꿈과 현실의 세계가 뚜렷한 구분이 없이 뒤섞여 있는데다 심지어 현실의 세계가 꿈과 이어지는 경우, 꿈을 통해 다른 차원으로 가는 경우까지 가능한 모든 시도가 일어난다. 거기에 건조한 번역은 난해함에 일조한다. 4권은 그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이런저런 잡동사니를 모두 모아 놓아 난잡하다. 수준이 너무 낮거나, 가벼운 메모에 가까운 것까지 실려 있고 그 양도 만만치 않아 읽기 힘들다. 대부분의 작품은 그럭저럭 읽고 넘어갈 수 있는 수준이긴 하지만 어지간한 매니아가 아니라면 별로 추천하지는 않는다.
참, 책 구성에 대한 불만이 하나 더 있는데 1권부터 3권까지의 작품들은 맨 앞에 작품해설이 있고 주석들이 각 편마다 달려 있다. 나름 출판사에서 심혈을 기울인 선물이지만 받는 사람으로서는 곤혹스럽다. 주석이고 작품해설이고 스포일러를 가득가득 담고 있어 읽어서는 안되는 경우까지 있기 때문이다. 물론 어떤 경우에는 꼭 필요한 정보일 때도 있지만 현저하게 많은 주석이 스포일러를 가지고 있다. 주석이야 안들춰보면 그만이지만 작품마다 맨 앞에 있는 해설은 그냥 지나치기가 너무 힘들다.
여기에 한가지 알아 두어야 할 것이 있다. 고전 공포의 아버지라고 하지만 현대의 문학에 비하면 현저하게 뒤떨어져있는 작품들이 대부분이다. 물론 <광기의 산맥>이나 <우주에서 온 색채>, <인스머스의 그림자>와 같은 명작도 있지만, 대부분은 공포라기 보다는 설정에 가까운 이야기들이다. 당시에는 보통 충격이 아니었을 작품들도 현대인의 눈으로 보면 간지러운 수준일 수 있으니 말이다.
예를 들면 작품의 대부분이 비슷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나쁜 내력(예를들면 혈통)을 가지고 있는 주인공이나 주인공 친구가 자신의 내력을 조사해보니 자기 조상이 외계인이었다는 류의 얘기는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다섯 개가 넘어간다. 또 무시무시한 마을이 있었는데 조사해 보니 미지의 생명체 였더라 같은 건 부지기수고 유전적인 외향의 변화, 근친에 의한 장애를 소재로 하는 경우를 없는 작품을 찾기가 어려울 정도다. 실제로 러브크래프트는 인종차별주의자였다는 기록도 있는데 작품속의 혈통 집착을 보면 이해가 간다. 또, 요즘의 공포소설과 달리 직접적으로 공포스러움을 언급하는 경우가 많은데 예를 들면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공포가 그를 덮쳤다’라는 문장으로 공포심을 조성하는 경우들이 빈번하게 나오는데 요즘의 묘사와 비교해 보면 철없는 수준이다. 물론 이런 단점들은 러브크래프트 뿐만 아니라 다른 고전작가들에게도 적용되는 얘기다. 100년이상 발전해온 분야가 당시보다 퇴보하는게 더 우스운 일 아니겠는가. 하지만 <랜돌프 카터 연작 시리즈>나 <광기의 산맥>, <누가 블레이크를 죽였는가>와 같은 작품들은 지금의 눈으로 읽어도 대단하다. 특히 <광기의 산맥>은 스케일도 스케일이지만 묘사까지도 훌륭해 개인적으로는 러브크래프트의 가장 위대한 작품으로 생각한다.
정리하자면, 러브크래프트 전집은 단순한 활자욕심에 섣불리 접근하기에는 난해한 책이다. 공포문학을 표방하고는 있지만 현재의 관점에서 봤을 때는 공포라기 보다는 판타지물에 가까우니 말이다. 판타지 괴기물 정도가 적당하겠다. 그 중 골라 읽을 수 있다면 좋겠지만 여건이 안된다면 1~2권만으로도 충분하고 조금더 나아간다면 3권까지가 딱 적당하다. 4권은 어지간한 매니아 말고는 읽지 않아도 된다. 특별히 눈에 띄는 작품도 없고..
마지막으로 덧붙이자면 러브크래프트는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인류의 가장 오래되고 가장 강력한 감정은 공포다. 그리고 가장 오래되고 가장 강력한 공포는 미지의 것에 대한 공포다.”
나는 이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가장 강력한 공포는 미지가 아니라 무기력에서 나온다. 저항할 수 없는 대상이야 말로 가장 무서운 존재가 아닐까.
러브크래프트 전집 세트 (1~4권)
- 저자
- H. P. 러브크래프트 지음
- 출판사
- 황금가지 | 2013-10-30 출간
- 카테고리
- 장르소설
- 책소개
- 『러브크래프트 전집』 시리즈 총 4권 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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