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에 숲에 나무를 숨긴다는 소재는 무지하게 진부한 소재다. 영화나 소설을 이 소재 한가지로만 글을 쓴다면 엄청 유치했을게다. 에드거 앨런 포가 이 소재만을 가지고 짧은 단편을 남겼다. 과연 유치했을까.
듀팡이라는 한 탐정이 경찰의 G경감으로부터 중요한 편지를 잃어버렸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정치적으로 매우 중요한 그 편지는 수많은 경찰력이 그 편지를 찾기 위해 전력을 다했으나 결코 발견하지 못한다. 심지어 그 편지를 누가 가지고 있는지도 알고 있는1 상황에서...
잃어버렸다는 편지는 듀팡이 찾아낸다. 그것도 너무 쉽게 편지지에 구겨져 있는채로.. 여기서 이야기가 끝나면 시시했겠지만, 천재작가 포는 듀팡의 입을 빌어 문학사에 길이 남는 한가지 설정과 한가지의 위트있는 풍자를 남겼다. 작중에서 가장 중요한 물건은 바로 도둑맞은 편지다. 그러나 작품속 어디에도 그 편지의 내용은 나오지 않는다. 편지라는 물건의 특성상 내용이 담기지 않으면 종이쪼가리나 마찬가지인데도.. 한마디로 가장 중요하긴 하지만 그게 무언지 독자들은 알지 못하지만 극중 인물은 알고 있다. 그러나 그 내용을 몰라도 이야기는 굴러간다. 이같은 설정이 포가 최초라고 하기는 어렵지만 이렇게 소설의 중심소재로 활용한 건 거의 최초의 사례다. 그가 가졌던 대중성을 생각하면 더더욱(포는 생전에는 인기가 없었지만 사후에는 엄청난 인기를 누렸다)...
풍자에 해당하는 부분은 권력기관 혹은 관료들이 눈뜬 장님이라는 사실이다. 아무리 많은 인력이 동원 되어도 천재 한명을 당해내지 못한다는 이야기는 앨런 포를 무시했던 당시 문학계와 사회에 대한 비판이다. 패러다임이 변했음에도 그것을 인지하지 못하는 기성 세대에 스스로가 천재였던 포의 비꼼이었던 것이다.2 그러면서 스스로를 시인으로 소개하고 경찰은 바보라 표현하지만, 결코 바보로 단정짓지는 않는다. 개그 프로에 나오듯이 듣는사람이 이해 못하는 조롱인 셈이다.
이 작품의 마지막에도 스스로의 유식을 뽐내며 듣는 사람이 이해못할 조롱을 하나 남기는데..
그토록 가혹한 음모도 디에스테스에게는 앙갚음이 되었음. 아트레우스에게는 맞지 않을 지언정..
(연극, <아트레>中, 크레비용)
일본어 중역으로 이렇게 이상한 문장이 되었는데 정리하면 아트레우스에게는 맞지 않은 음모가 디에스테스에게는 충분했다~ 뭐 그런 뜻이다. 한마디로 아트레우스가 듀팡이고 디에스테스가 D장관이다.3 예전에 D장관으로부터 당한게 있다 하니 그걸 가지고 비꼰 듀팡의 위트인데, 조롱치고는 상당히 고급스럽다. 그리스 신화에 대한 이해가 뒷받힘 되어야 느낄 수 있는 조롱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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