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수레의 책읽기

[작은인간: 인류에 관한 102가지 수수께끼] 인간은 원래 본능보다 문화적 선택으로 진화해왔다.

슬슬살살 2014. 9. 22. 22:52

◆ 대중을 위한 최초의 문화인류학 서적
지금으로부터 20여년 전. 인류학자 마빈 해리스는 <작은 인간>이라는 책을 펴냈다. 여기에는 인류에 관한 102가지 수수께끼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데, 이것이 공전의 히트를 쳤다. 이전까지의 문화인류학 서적은 지루하기 그지 없는 선사시대와 호모 사피엔스부터 시작해서 지리한 변만년의 이야기를 늘어놓은 후에야 본론에 도달했었다. 그러나 마빈 해리스는 102가지의 질문으로 그의 주장을 쪼갬으로서 일반인이 쉽게 접근 할 수 있도록 했다. 뿐만 아니라 102가지의 질문과 답은 서로 유기적으로 얽혀 있어 전체적인 맥락에 들뜸이 없도록 안배했다. 이런 디테일한 배려가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대중들이 그를 기억하게 만드는 원동력이 아닐까 싶다.  단언컨데, <작은 인간>은 수많은 문화인류학 서적 중 대중성을 확보한 첫번째 책이다.

 

제레미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의 바탕이 된 이야기
102가지의 질문을 모두 이 블로그에서 다룰 수는 없지만 전체적인 맥락은 이렇다. 인류의 문화역사적인 성과들을 살펴보면 유전적인 우연함은 극소수이거나 거의 없다. 현생 인류가 에렉투스에 들어선 그 시점부터 인류는 다윈의 자연선택론에서 벗어나 문화적 선택의 결과 위에서 살고 있다. 인류의 발달은 유전적 특질보다 문화적 특질에 의해 결정되어 왔다.

 

 동굴이 아니라 아파트에서 살고, 야생마보다는 블랙 앙구스의 가축을 즐겨 먹도록 명령하는 유전자도 전혀 없다. 우리가 플로피디스크와 사육한 동물을 선호하는 것은 자연 선택이 아니라 문화적 선택의 결과이다.

 

이를 입증하기 위해 마빈 해리스는 수많은 질문을 던지는데 그중에는 눈살이 찌뿌려지는 질문도 있다. 예를 들면 인간이 식인행위를 한 이유와 식인을 터부시 하는 문화가 정착된 이유라던지, 근친상간과 동성애를 대부분의 문화권에서 금지하는 이유. 남자가 여자보다 육체적으로 발달한 이유 따위이다. 가장 마지막의 질문에 대한 답을 보면 여자가 임신을 하기 때문이다. 태초에는 남녀가 동일했겠지만 열달이라는 기간동안 사냥이 불가능한 몸이 되어버리는 여성 대신 남성이 외부활동을 더 할 수 밖에 없었고 이는 남녀의 발달 방향이 달라지는 결과를 낳게 된 것이다.

 

남성 우월주의자들은 남성에게 종족번식의 본능이 있어서 일부다처제가 가능하다 이야기 한다. 이 이야기는 바람둥이들이 흔히들 우스개소리로 자신을 변명할 때 쓰이기도 한다. 마빈 해리스에 따르면... 개소리다. 이걸 이중 기준의 성 정치(the sexual politics of the double standard)라고 하는데 여성의 출산력과 노동력을 통제하려 하기 위함이 일부다처제로 결론지어졌던 것이다. 남자가 단순히 임신, 출산을 하지 않는다는 이유 하나로 여성이 억압되어온 것이다. 남자는 한번의 섹스로 끝나지만, 여성은 10달 동안을 부자연 스럽게 살아야만 한다. 의료기술이 후진적이면 후진적일 수록 이는 생명과도 직결 되는 문제다. 이러함이 여성에게 성보수성을 지니게 했고, 처녀성의 강조, 혼전순결 등등 다양한 억압도구의 원천이 되었다.

이렇게 <작은 인간>은 진짜 궁금했던 문제들을 문화인류학적인 관점에서 풀어내 독자를 필사적으로 납득시킨다.

 

후반부 두개의 지구(유라시아와 아메리카 대륙)와 관련한 이야기에서는 양측의 문명발달에 차이가 벌어지게 된 이유를 가축화 실패에서 찾는 걸 보면 <작은 인간>이야 말로 <총,균,쇠>에 배경지식을 제공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 초기 국가발전의 두 중심지 사이의 거리가 멀고 서로 동떨어져 있을수록, 그리고 그들이 공유하는 사육 동식물의 종류가 적을 수록, 한 곳에서의 진화가 다른 곳에서 영향받았을 가능성은 그만큼 적다.
- 각 지역에서 처음 국가가 출현하기까지의 고고학적 순서를 보자. 
수렵채집 양식에서 출발하여 동식물의 사육화 단계를 거쳐 인구밀도 및 거주지역 크기의 증가, 정착 마을, 기념비적인 공공업적을 자랑하는 호전적 군장사회에 이르러 국가로 이어진다.

어떤가. 이게 <작은 인간>인지 <총,균,쇠>의 한 단락인지 구분할 수 있을까?

 

모든 인간이 평등하다는 이 단순한 명제를 증명하기까지 왜이렇게 돌아 왔을까.
<마빈 해리스>가 문화인류학으로 이야기하고 싶어하는 것은 하나다. 인류가 모두 평등함을 인정하고 인류가 살아남는 평화로운 길을 찾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인류가 문화적 선택에 따라 진화해 왔음을 인정하고 국가적 단계에서 벗어나 전 범 인류적인 지향점을 찾아야 한다. <작은 인간>은 그래서 평화로운 책이다.

 

인류가 선천적으로 공격적이고 그래서 전쟁은 불가피하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한 인종에 우열이 있어서 각 사회를 안팎으로 위계적인 구분이 생기는 것은 기나긴 문화적 진화 과정의 결과가 아니라 자연 선택의 결과라는 주장도 비과학적인 것으로 거부해야 마땅하다. 이미 수많은 증거들이 그것을 보여 준다.

우리는 우리가 아직 문화적 진화를 가스리지 못하고 있는 정도를 인정하고, 인간 조건과 역사의 반복적 과정을 객관적으로 연구함으로서 그것을 다스려 가야 한다.

 


작은 인간

저자
마빈 해리스 지음
출판사
민음사 펴냄 | 1995-05-01 출간
카테고리
인문
책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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