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월한 인간사회를 결정짓는 요소는 무엇인가.
세계적인 석학 제레미 다이아몬드가 25년간 써내려간 이 책을 관통하는 단 하나의 질문이다. 잘못 해석한다면 인종간의 우열을 이야기 할 수도 있겠지만, 제레미 다이아몬드는 그 외적인 이야기를 풀어낸다. 인간사회의 우열을 결정한 건 우연에 불과하다. 정확히는 지리적인 이점 때문에 벌어진 당연한 차이에 불과 할 뿐 흑인이 백인보다 열등하지 않고 한민족이 뉴기니의 원주민보다 뛰어 나지 않다. 어찌 보면 당연 해 보이는 명제지만 이를 증명하기 위해 저자는 아프리카에서 인류가 최초로 생겨났을 때 부터 가장 최근 오스트레일리아의 원주민들이 문명화되는 그 순간까지를 면밀히 들여다 본다.
안나 카레니나의 법칙: "부르심을 받은 사람은 많지만 뽑히는 사람은 적다."
이 글에 따르면 인류가 문명을 가지게 되는 요소는 농경에서 출발한다. 당연히 농사짓는 것이 유리하니 그걸 빨리 발견 한 민족이 우월하지 않을까 하는 질문이 나올 수 있다. 그러나 농사라는 게 그리 간단한 문제만은 아니다. 야생식물이 작물이 되기 위해서는 몇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예를 들면 작물화가 가능한 대상 후보군이 해당 지역에 존재하여야 한다. 다시 말하자면 쌀의 모체가 되는 벼가 없는 지역에서는 아무리 뛰어난 사회라 하더라도 쌀농사를 시작 할 수 없다. 당연한 얘기지만 이 당연함이 없었던 지역이 지구에는 너무나 많았다. 척박하기 그지 없는 오스트레일리아부터 아메리카 대륙에 이르기까지.. 인류가 먹을 수 있는 작물이라는 게 14종 미만임을 감안하면 놀라울 만큼 낮은 확률이다. 그 뿐 아니라 해당 작물은 알곡도 굵어야 하며 수확의 기간이 짧을 수록 유리하다. 가축에 있어서는 더 어려운데 일단, 가축이 될만한 후보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적게 먹어야만 하고.. 사자가 가축이 되지 않은 건 야생성 때문이 아니라 적은 번식율, 많은 먹이의 량 때문에 효율성이 너무 낮기 때문인 것이다. 제레미 다이아몬드는 이를 <안나 카레니나의 법칙>이라고 부르는데 후보는 많지만 수많은 조건 중 한 가지라도 어긋나서는 안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안나 카레니나>에 실린 원문은 다음과 같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엇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불행한 이유가 제각기 다르다."
문명의 전파 역시 마찬가지다. 이것 역시 뛰어난 문명이 못한 문명에게 전달하는 방식이 아니다. 그 문명을 가지고 있는 이가 그 문명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 사회에 전달을 하는 개념이다. 문화가 반드시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게 아니며 오히려 역행한 경우도 상당히 많이 존재한다. 일본에서 받아들인 총기문화가 여러가지 이유로 사멸했던 것처럼. 또한 문화는 동서축으로 흐르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위도에 따른 기후가 비슷할 수록 농사를 비롯해 다른 문화들이 퍼져나가기 쉽기 때문이다. 이는 유라시아가 문명에 정점에 있는 이유를 잘 말해주고 있다. 최초의 문명사회였던 아프리카와 남아페리카의 실패원인 대부분이 이런 지리적 차이에 있다. 한마디로 복불복에 다름아니라는 것이다. (운도 실력?)
일단 가축화와 작목이 해결 된 후부터는 빠르게 문명의 차이가 벌어진다. 정주가 가능해 지면서 인구는 빠르게 늘어나고 손쉽게 사회가 건설된다. 인구가 증가하면서 생기는 여러 요인들.. 뛰어난 물건의 발명 가능성 증가, 동물로부터의 전염병과 면역, 잉여 생산물로 먹고 사는 전문가집단(왕, 군인 등) 존재 등이 문명을 이룩하게 만든다. 이런 지리결정론이야 말로 숙명론보다 더 무서운 답변이다. 우리 조상이 단지 거기 살았을 뿐인데, 우리는 아프리카에서 내전에 휩쓸리는 대신 남한에서 인터넷을 즐길 수 있다는 얘기가 숙명론 보다 더 잔혹하게 느껴진다.
제레미 다이아몬드는 이러한 논리전개를 단순히 가설로만 풀어내지 않고 타당한 증거의 활용, 방법론적인 고찰까지 폭넓게 접근해서 이 원고를 완성시켰다. 고지식할 정도로 쓸데없이 많은 백데이터를 활용했다고 생각할 정도인데 이런 집요함이 논리를 완전무결하게 뒷받침한다.
우연히 찾아낸 단서 한개로 25년을 연구하는 집요함
분자생리학, 진화생물학, 생태지리학을 전공한 제레미 다이아몬드가 생물학 기원연구를 위해 찾은 뉴기니에서 받은 단 하나의 질문이 이 역작을 만들어냈다. "왜 우리 흑인들은 백인들처럼 그런 화물을 만들지 못한 겁니까." 백인과 흑인은 어째서 다른가라는 질문은 인종차별주의적인 답변을 이끌어 낼 수도 있었다. 그러나 제레미 다이아몬드는 이 질문을 깊이 고찰했다. 그리고 700여쪽의 이 책으로 답변을 전했고, 이제는 주류 학계에서 사실살의 정론에 가까운 평가를 받고 있다. 이 답변은 다음과 같이 정리 될 수 있다. 첫번째는 가축화 여부다. 아프리카에는 얼룩말, 강돼지, 코뿔소와 하마가 있었고 이들은 모두 가축화에 실패했다. 유라시아에는 말과 소, 양이 있었다. 두번째로 농작물의 종류에서도 많은 차이가 났다. 세번째는 유라시아가 아프리카보다 넓었다는 이유가 있고 그마저도 방향축이 각각 동서와 남북으로 유라시아의 전파력이 훨씬 빠른 상태였다.
원주민은 미개인이 아니다.
선사시대의 인류는 먼 곳 까지 배를 타고 항해 할 수 있을 정도로 발달한 사회였다. 영화에서 보는 것처럼 나뭇잎으로 팬티를 만들어 입고 식인을 하는 것으로만 판단할 수 없는 부분인 것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원주민들의 모습은 대부분 자의든 타의든 사회적응에 실패했으나 우연찮게 살아남은 소수에 불과하고 대다수의 선사인들은 현재의 우리 모습으로 다시 태어나 있는 것이다. 이 책 한 권으로 우리가 누리고 있는 모든 것들은 우리 민족이 잘나서가 아닌 우연의 산물임을 인지할 수 있다. 한마디로 인종을 가르는 수많은 행위들은 비열하고 무식한 혈통주의에 다름아니다. 한민족은 평화를 사랑하는 백의민족이 아니고 우연찮게 발생한 여러 운들에서 살아남은 인류일 뿐이다. 이번 개정판에 "일본인은 어디에서 왔는가"라는 논문이 추가되어 있는데 이걸 두고 임홍빈이라는 분의 민족주의 가득한 답글 까지 실어 놓은 걸 보면 정작 편집국은 <총,균,쇠>의 주제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열수레의 책읽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작은인간: 인류에 관한 102가지 수수께끼] 인간은 원래 본능보다 문화적 선택으로 진화해왔다. (0) | 2014.09.22 |
---|---|
[닥터 슬립] 트루낫 VS. 스팀헤드 (0) | 2014.09.06 |
[하비로] 현세의 지옥을 관통하는 단테의 사랑 (0) | 2014.08.11 |
[적의 화장법] 적은 화장을 하고 내곁에 있다 (0) | 2014.08.05 |
[러시아혁명: 무엇을 할 것인가] 조악한 번역에도 흥미진진한 혁명의 한복판 (0) | 2014.08.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