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성을 가장한 가십
프랑스의 정신과 전문의가 쓴 이 책의 원제는 '유혹'(Se'duire)인데 우리나라로 넘어 오면서 심리학이라는 단어가 붙었다. 유독 심리학, 인문학이라는 단어를 좋아하는 우리나라 출판시장에 맞춘 모양인데 심리학이라는 단어와는 잘 맞지 않는 부분이 많으니 유의하자. 전체적인 맥락을 보면 인간을 짐승의 위치로 떨어트려 놓고는 성적 본능을 관찰한 글이다. 유혹은 이성간의 끌리는 이유라고 정의할 수 있다. 짐승들은 성적 만족을 비롯해서 종족 번식을 위해 이성을 매혹시키는 작업을 하고 있는데 인간 역시 그와 다르지 않다는 것이 글의 핵심. 글은 위트 넘치고 재기발랄하지만 과학적으로 검증되었다고 볼 수 어려운 내용이 다수 다뤄지고 있고 논리적으로 극단적인 면도 가지고 있어 교양보다는 술자리 가십거리로 적당한 정도다.
인간은 어떻게 서로에게 매혹되는가
이 글의 초반부는 5개의 장으로 이루어져있다. 시각적인 유혹, 청각적인 유혹, 미각과 후각, 촉각에 따른 각각의 유혹이다. 후반부는 갑자기 동떨어진 내용을 다루고 있다. 페로몬과 근친상간, 카사노바, 소아애 같은 삼류 잡지에나 나올법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질적으로도 별반 차이가 없을 정도다. 아무튼 여기에 나오는 사례들은 익히 알고 있는 것들이다. 맡을 수는 없지만 페로몬 향수가 효과가 있다던지1, 남자가 원시시대부터 사냥을 했기 때문에 시각적이라던지2와 같은 추측을 자랑스레 레퍼런스까지 달아서 쓴 예시들은 아무리 좋게 봐 줄래도 아집이라고 밖에 생각할 수 없다.
문화적 편향, 극단적인 우월주의
장난스레 표현되고는 있지만 미국에 대한 문화 우월주의에 심하게 빠져 있는 모습도 드러낸다. 무식한 양키라던지, 뚱뚱한 미국여자와 같은 비하적 표현이 조크랍시고 곳곳에 숨어 있는 걸 보면 한숨만 나온다. 은근히 깔려있는 마초이즘은 불쾌하기까지 하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책을 국내에 들여 왔을까. 물론 흥미로운 점도 적잖다. 등장하는 각종 동물의 이성관(?), 유혹과 짝짓기의 방법같은 소재는 흥미롭다. 또 재미삼아 해보는 실험. 예를 들면 블라인드 테스트를 통해 부모가 입었던 티셔츠를 맞추는 실험같은 것들은 상당히 재미있다. 결과는 참혹하다3.
가장 흥미로운 사실은 대부분이 똑같은 사람을 자기 아버지로 추정했다는 점이다. 딸들의 경우 여덟명 중 일곱명이 똑같은 티셔츠를 자기 아버지의 것으로 지목했다. 그런데 그 티셔츠응 가장 선호도가 낮은, 즉 가장 불쾌한 체취를 풍긴다고 생각한 티셔츠였다! 실제의 아버지가 입었던 티셔츠에 대해서는 그것이 자기 아버지의 것이라고 식별을 하지 못했지만 대체로 체취가 좋다고 평가했다.
편향되고 좁은 시야를 제시하는 이 책에서 이성간의 유혹의 본질을 찾기는 어렵다. 그렇지만 이런 생각을 가질 수도 있다는 생각에서 접근해 볼 만은 하다. 적어도 논리적 궤는 일관성을 유지하고 있으니까.
남자는 욕망하는 상대를 사랑하고 여자는 사랑하는 상대를 욕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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