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대전이 한창인 때. 무솔리니가 집권한 이탈리아는 파시스트와 자유주의자가 부딪히고 있다. 독일군과 연합군이 진퇴를 반복하던 그 곳에 세명의 남녀가 있었다. 안젤리나, 기울리아, 그리고 안토니오다. 이 책은 기울리아가 안젤리나의 아버지에게 보내는 편지 형태를 띠고 있다. 사촌지간인 안젤리나와 기울리아는 전쟁통에 만나 피난중이다. 조용하고 내성적인 기울리아와 달리 안젤리나는 두려움이 없는 당찬 여인. 특히나 종교를 강하게 불신한다. 오로지 자신의 신념과 직관만을 믿고 앞으로 나아갈 뿐인데, 원래부터 그랬다기 보다는 전쟁이 사람을 그렇게 만들었다고 봐야겠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은 전쟁 한복판이다. 수많은 사람이 죽고, 집을 잃고, 가족을 잃는 와중에 신에 대한 믿음이 남아있기는 어려울 터. 루이스 린저는 이 작품에서 신을 부정하는 인간이 종교에 몸담기까지를 그렸다. 종교적인 색채가 강하지만 작가의 깊은 내공이 로맨스 소설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피난을 거듭하던 두 여인은 우연히 안토니오가 이끄는 빨치산에 합류해 독일군을 향한 유격작전들에 참가한다. 누구보다 앞장서며 대원들을 이끌어 나가던 안젤리나와 안토니오는 사랑에 빠진다. 어느날 작전중 고립된 안젤리나가 무너진 수녀원으로 홀로 피신한다. 몸을 추스리던 안젤리나는 수녀원에 남아있던 성경, 곳곳에 있는 암시들로 인해 수녀원이 자신의 운명이라 여기고, 후에 찾아온 기울리아와 함께 수녀원에 남아 있는다. 완전히 180도 변한거다.
그녀를 강하게 붙잡는 건 수도원에 붙어있던 문구. 그대 떠날 수 있거든 떠나라(Egrederemodo, frater, egrederesipotess)다. 어떤 누이가 죽기 전 신부인 오빠가 자기 곁에 있기를 원해 오빠를 부른다. 그러나 오빠가 수도원으로 돌아갈 시간이 오자 누이는 큰 비가 내려 오빠가 가지 못하게 해 달라 기도한다. 그 소원이 들어지자 기뻐하며 누이가 말한다. "자, 갈 수 있거든 가세요."
언제든 떠날 수 있지만 그 오빠는 떠나지 못했고, 안젤리나 역시 수녀원에 머문다. 그것이 운명이었다. 전쟁이 끝나고 수녀원의 원래 주인들이 돌아온 후에도 안젤리나와 기울리아는 계속 수녀원에 머물고 결국 수녀가 되려고 준비까지 하게 된다. 준비가 한창이던 어느날, 안토니오가 찾아오고 안젤리나는 깊이 고뇌한다. 원래대로 신을 섬기는 수녀가 될 것인가. 사랑을 찾아 떠날 것인가. 안젤리나의 결정은 무엇일까.
나는 그를 언제까지나 사랑할꺼야. 그러나 그런 사랑과 아픔이 사냥꾼의 올가미에서 벗어나 자신의 둥지를 찾은 비둘기의 기쁨에다 비할 수나 있겠니? (안토니아를 떠나보낸 안젤리나의 기분에 대해 물은 기울리아에게 한 답변)
루이스 린저는 작품 내내 신의 존재에 대한 고민을 이야기한다. 신이 존재한다면 왜 이런 시련을 주는지, 어째서 감내해야 하는지를 안젤리나와 기울리아와의 관계에서, 안토니오와 이름모를 신부와의 대화에서 강하게 드러낸다. 결국 신의 평화와 인간의 평화가 다르지만 언제나 진실은 하나라는 지극히 기독교 중심적인 결론으로 소설은 마무리 된다. 작품이 쉽고 역사적 배경과 등장인물의 구도가 흥미진진 하지만 무신론자인 나로서는 강한 거부감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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