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수레의 책읽기

[스타터스] 몸을 빼앗긴 소녀. 욕망에 대항하다.

슬슬살살 2015. 6. 16. 22:26

멀지 않은 미래의 미국. 연장자 인구가 늘어나면서 미성년자 고용은 법으로 금지되어 있다.1 연장자 인구의 수명이 200살 가까이로 늘어나면서 일자리를 유지해야 할 필요성이 생겼고 19세 이하의 미성년자의 노동을 법으로 금지한 것이다. 그 이후 태평양 연안국 사이에 전쟁이 벌어졌고 미국 내에 생물학 무기가 떨어졌다. 전쟁 종료. 이 생물학 무기는 백신을 맞지 못한 이들을 모두 멸종 시켰고 노약자라는 이유로 우선 백신을 접종 받았던 이들만 살아 남았다. 20대 이하의 청소년들. 그리고 60살 이상의 노인들. 전자는 스타터(Starter)로 후자는 엔더(Ender)로 불리운다. 전쟁 후 1년. 여전히 노동법으로 노동을 할 수 없는 청소년들은 보호소를 가장한 감호소에 수감되거나 거지 생활을 해야만 한다. 대부분의 부모는 죽었기 때문에 할아버지나 할머니가 없는 모든 이들이 이러한 상황이다. 반대로 엔더들은 적어도 부유한 생활을 지속하고 있다. 수명이 200살로 늘었기 때문에 적어도 자기가 벌어서 쓰는 경제활동은 가능하니까.

 

여기서 그친다면 전쟁 후 디스토피아에 불과하겠지만 일부 부유한 엔더들은 탐욕의 발자욱을 한걸음 더 내딛는다. 발달한 기술을 통해 스타터의 몸을 사는 것이다. 뭐 매춘 정도의 의미가 아니다. 실제로 몸을 렌탈해서 일정 기간 동안 삶을 즐기는 개념이다. 원래의 스타터가 수면상태에 빠진 사이에 정신으로 몸을 지배하면서 즐거운 삶을 즐겨 볼 수 있다. 젊은 몸을 가지고 클럽에서 즐기거나 윈드서핑을 할 수도 있다. 그야말로 탐욕의 끝이다.

 

프라임 데스티네이션을 이용하시는 렌터들이 지키셔야 할 수칙:
1. 귀하께서는 피어싱, 타투, 머리 손질, 또는 염색, 미용적 콘택트 렌즈 착용에 한정되지 않고, 확대 수술을 포함하여 어떤 외과 수술 절차를 포함, 어떤 방식으로도 귀하의 대여 신체의 외관을 바꾸는 것은 허용되지 않습니다.
2. 필링, 제거, 보석 박기를 포함한 어떤 치아의 변경도 허락 되지 않습니다.
3. 프라임 데스티네이션의 주변 반경 80킬로미터 안에 머무르셔야 합니다. 지도가 유용하실 겁니다.
4. 칩을 허락 없이 건드리는 어떤 시도가 있을 경우, 환불 없는 즉각적인 취소가 이뤄질 것이며, 또한 법적으로 벌금을 과금합니다.
5. 귀하의 대여 신체에 어떤 문제가 생길 경우, 가능한 빠른 시간 내로 프라임 데스티네이션으로 돌아와 주십시오. 당신의 렌탈을 소중히 다뤄 주십시오. 신체가 실제 젊은 사람의 몸임을 항상 기억해 주십시오.
각각의 신경칩은 렌터들이 불법적인 행위에 연루된다는 것을 막는다는 사실을 알려 드립니다.

 

마지막 문장에도 불구하고 이 렌탈업체는 불법이다. 물론 국회의원이 끼어 있다던지 하기는 하지만 말이지. S/F임에도 불구하고 세대간의 갈등이 꼭 일어 날 수 있을 법한 일이다. 몸을 바꾸는 극단적인 일까지는 아니겠지만 지금의 세대 갈등이 <스타터스>의 축소판으로 느껴지는 건 왜일까. 수명은 늘어나고, 건강은 유지된다. 일자리는 없고 구 세대 역시 삶을 유지해야 한다. 젊은이들의 부담은 늘어만 간다. 한정된 밥그릇을 두고 벌이는 싸움. 공상과학소설 속의 세계가 디스토피아라면 지금 현실과는 얼마나 가까울까. 지금 역시 디스토피아인 건 아닌걸까.

 

16살인 캘리는 이 디스토피아에서 스스로 살 집을 마련하기 위해 몸을 렌탈하게 된다. 한달 정도만 기억을 잃고 있으면 엄청난 부를 얻을 수 있다는데, 스타터로서 힘든 삶을 사느니 충분히 고려해 볼 만한 얘기다. 캘리가 렌탈된 상태로 정신을 차리며 이야기는 시작된다. 갑자기 정신을 차린 캘리, 머릿속에서 들려오는 렌터의 목소리. 영원히 몸을 차지하는 서비스를 제공하려는 몇몇 엔더들의 탐욕을 알게 된 캘리는 자의반 타의반으로 대항한다. 2

 

간단한 책 소개만으로도 엄청난 흡입력을 가진 시놉시스다. 실제 전개 역시 손을 뗄 수 없게 만드는데 디스토피아에 대한 저항 뿐 아니라 사춘기 소녀가 겪게 되는 인간관계에 대한 성장통까지도 잘 담아냈다. 부모에 대한 그리움. 동생에 대한 책임감. 또래 남자아이에 대한 호감과 질투까지.. 디스토피아적인 공포와 긴박한 액션씬을 통한 전개도 나무랄데 없다. 이 소설이 데뷔작인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 번역도 충실하다. 그러나,

 

워낙 스토리가 탄탄하고, 작가의 이야기 얼개가 촘촘해서 적당한 수준으로 마무리 했어도 호평을 받았을 작품이었다. 결말을 보기 전까진. 결론 부분은 그야말로 용두사미. 심지어 다른사람이 이어 쓴게 아닐까 싶을 정도다. 그 어떠한 것도 해결되지 않은채 종결 된다. 물론 프라임 데스티네이션의 서비스는 법 테두리 안에서 심판을 받게 되고 캘리는 집이 생긴다. 그러나 이 프로젝트의 핵심 세력인 올드맨의 정체는 끝내 밝혀지지 않고 블레이크의 몸을 이용해 캘리에게 접근 한 것. 그러나 그 이유 역시 밝혀지지 않는다. 게다가 캘리를 없애거나 막아낼 수많은 기회와 수단이 있었음에도 손 놓고 있었던 올드맨의 의도 역시 의문이다. 이렇게 찝찝한 결론만 던져 놓은 채 마무리를 지어버리다니. 캐릭터에 너무 집중하는 신인들은 본래 의도와 다른 방향으로 캐릭터가 튀어나갈 때 제어를 하지 못하는 일이 종종 생긴다고 한다. 캐릭터 스스로가 자신의 방향을 잡는 건 반길만한 일이지만 제어를 못하면 결론이 나지 않는다고 하는데 딱 그짝이다. 뭔가 속편을 쓸 계획이었더라도 이런 식의 결말은 노여움만 살 뿐이다. 그럼에도... 재밌는 건 사실이다.

 

PS. 표지 디자인이 참 맘에 든다.

 

 


스타터스

저자
리사 프라이스 지음
출판사
황금가지 | 2012-03-30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가까운 미래, 타인의 육체를 대여하는 시대가 열린다! 숨겨둔 욕...
가격비교 글쓴이 평점  

  1. 멕시코가 국경을 폐쇄했다는 것으로 볼 때 스타터스의 배경은 미국만을 대상으로 적용됨을 알 수 있다 [본문으로]
  2. 몸을 빌린 엔더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