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삼매경

[쎄시봉] 포인트를 잘못 잡았을 뿐 달달한 감성은 훌륭해

슬슬살살 2015. 10. 11. 17:12

'응사'시리즈의 엄청난 흥행, <건축학개론>의 성공, <국제시장>과 <써니>이전에 있던 <친구>까지..'추억팔이'는 꽤 짭짤한 흥행 보증수표다. 게다가 <쎄시봉> 제작 뒤에는 탑클래스 예능 프로 <놀러와> 특집의 성공이 자리하고 있으니 이만큼 든든한 뒷배가 있을까. 캐스팅도 화려하다. 추억 대표 배우 두명이 함께 했으니. 배우 정우는 '응사', <바람>에서 복고연기를 완벽히 소화했고 한효주 역시 대표작은 모조리 시대물이다. 조연들 역시 한연기 하는 이들이다. 게다가 쎄시봉은 한국영화에서 또다른 흥행요소 '음악'을 가지고 있지 않은가. 그것도 배우들이 직접 노래하고 연주하는 노력까지 보였으니 이만하면 실패하는게 더 어려워 보일지경이다.

 

그러나 최종성적표 170만. 미도파 백화점같은 추억의 거리까지 생생하게 재연한것 치고는, 배우들의 연기 또한 훌륭했는데도 고작 170만이다. 소리없이 지나갔던<탐정: 더 비기닝>도 250만 들었다. 도대체 뭐가 문제였을까.

 

한 블로거는 영화 외적인 부분에서 그 원인을 찾았다. 장교인 한효주의 남동생이 연루된 군폭행 사고가 수면 위로 올랐고 이에 따른 후폭풍이라는 의견이다. 이 때문에 주연배우의 홍보활동이 제약을 받았다는 내용이다. 나름 합리적이다. 또 미숙한 마케팅 활동도 있었다. 기자시사회와 VIP 시사회를 진행하면서 제작사가 많은 실수를 했고 이런 아마추어적인 모습들이 흥행 부진으로 이어졌다는 뜻이다. 이것도 합리적으로 보인다. 그래도 160만은 너무했다. 당시 경쟁작이 <킹스맨> 정도 였음을 생각해 보면 정말 말도 안되는 성적표를 받아온거다. 이 경우 결론은 한가지다. 공부를 진짜 못한거다.

 

가만히 들여다 보면 쎄시봉은 음악적인 추억일 뿐, 당시 쎄시봉 음악카페를 몇이나 들락 거렸을까. 라디오, 방송을 통해 가수를 보고 음악을 향유하기는 했을 망정 쎄시봉에서 살면서 그들을 즐겼던 세대란 게 과연 몇이나 되냐는 말이다. 60년대 후반에서 70년대로 넘어가던 그 시절은 독재와 가난으로 대한민국이 신음하던 때다. 그 때 통기타 치며 문화를 향유했던 이가 대한민국에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는게 진실이다. 심지어 그 시절을 즐겼을 유복한 세대 조차 추억을 찾을 수 없는 건 영화 내 쎄시봉이 차지한 비중이 생각보다 작기 때문이다. 냉정하게 보면, 쎄시봉은 구실일 뿐 본 얘기는 정우와 한효주의 로맨스 얘기다. 게다가 그 둘은 가상인물이라면 과연 어디에서 공감하고 추억을 찾을 수 있을까. 가수가 될뻔 했다가 친구를 팔아먹고도 지키는 순정은 너무 영화적이다. <건축학개론>에서 처럼 선배에게 좋아하던 여자를 빼앗기는 정도의 아이템은 당장 내 주변만 털어봐도 여럿 나올 얘기임을 비교해 보면 코드를 잘못 꼽았다는게 확 느껴진다. 한마디로 그때 그 추억을 영화는 보여주지도 못했고 그게 뭔지도 모르는 모양이 되어 버렸다. 추억을 보러 온 관객은 환타지를 봤고 그 결과가 160만이다.

 

포인트를 잘못잡은 실패가 뼈아프긴 하지만 분명 재밌는 영화다. 예쁜 한효주와 아직'응사'느낌 지니고 있는 정우의 로맨스 역시 달콤하고 음악들은 주옥같다. 그 시절을 잘 모르는 사람에게는 오히려 예쁜 그림일 수도 있으니 집에서 특선 영화로 틀어주면 꼭 보도록 하자. 

 


쎄시봉 (2015)

C'est Si Bon 
5.1
감독
김현석
출연
김윤석, 정우, 김희애, 한효주, 장현성
정보
로맨스/멜로, 코미디 | 한국 | 122 분 | 2015-02-05
글쓴이 평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