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이 결여된(?) 싸이코패스의 이야기로 보이지만 이면은 사회적, 전통적 가치에서 벗어난 한 인간을 극단적으로 그려낸 작품이다. 뫼르소는 어머니의 죽음 앞에서도 어떠한 감정도 느끼지 못한다. 어머니의 부고 앞에서 주말이 포함된 휴가를 내는 것에 대해 불편함을 느끼고 시신 앞에서 담배와 차를 마시기도 하며 장례식 다음날에는 해수욕장에서 마리와 데이트를 즐긴다. 우연히 알게 된 옆집 남자 레몽의 연애편지를 대필해 주면서 치정관계에 얽히고 결국 레몽을 쫒는 아랍남자를 총으로 쏴 죽인다. 재판관과 배심원은 뫼르소의 재판을 여는데 이 재판이 흥미롭다. 변호인이 사건의 원인과 증거를 중심으로 변호를 전개하는데 반해 검사는 뫼르소가 어머니의 죽음에서 눈물하나 흘리지 않은 냉혈한임을 증명하는데 중점을 둔다.
나는 한참 생각한 뒤에 사실은 후회하는 것보다 권태감을 느낀다는 말을 했는데 그가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과론적으로 전통적 가치에서 어긋난 이방인을 단죄하는 사회에 대한 이야기이다. 뫼르소는 햇볕이 눈부셔서 총을 쐈다는 진술을 하지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그 칼날이 속눈썹을 쑤시고 아픈 두 눈을 파헤치는 것 같았다. 바로 그때 모든 게 흔들렸다. 바다는 무겁고 뜨거운 바람을 실어 왔으며 하늘은 모두 활짝 열려 비 오듯 불을 쏟아 내는 것 같았다.
감옥에서의 삶도 뫼르소에게는 고통을 주거나 힘들지 않다. 조금 불편할 뿐이고 심지어 그걸 이해하는 단계에까지 이른다. 사형이 집행되던 날 뫼르소는 하늘의 별을 보면서 자신의 무관심과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 행복해한다.
아무도, 그 누구도 엄마의 죽음에 눈물을 흘릴 권리는 없다. 나 역시 모든 것을 다시 살아 볼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마치 그 커다란 분노가 나의 모든 고통을 씻어주고 희망을 없애버리기나 한 듯 온갖 신호들과 별들이 가득한 그 밤을 앞에 두고, 나는 처음으로 세계가 가진 정다운 무관심에 마음이 열린 것이다. 세계가 그렇게도 나와 닮아 마치 형제 같다는 것을 느끼면서 나는 전에도 행복했고, 지금도 행복하다는 것을 느꼈다.
해설에 따르면 인생은 그것 자체로는 의미가 없으나 의미가 없으므로 더욱 더 살 가치가 있는 것이라는 부조리의 철학을 표현했다고 하는데 그보다는 현대인의 소외가 무관심으로 이어지고 그 자체가 얼마나 부조리한지를 보여주는 소설이다. 표피적인 이야기만 놓고 보더라도 스릴러와 같은 전개가 일품인지라 내면의 이야기에 눈을 감더라도 충분히 가을밤에 어울리는 책이다. 문장과 문장에서 느껴지는 권태와 고독이 현대에도 충분히 먹히는 작품이다.
PS. 오늘자로 다음 서비스 정보박스 링크 기능이 종료됐다. 나름 태그와 평점 기능으로 유용했는데 안타깝다. 이전을 준비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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