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이런 영화를 꽤나 좋아 한다. B급스러운 공포, 스릴러. 너무 완성도 높은 공포물은 잔상이 많이 남아서 무섭다. 딱 이정도. 적당한 잔인함과 비현실성이 혼재되어 있는 공포 판타지가 좋다.
정년 퇴직 후 늙고 병든 몸으로 시골에 혼자 살고 있는 박여옥 선생에게 16년 전 제자들이 찾아온다. 선생님을 수발해온 제자 미자가 예전 친구들을 부른 것. 결혼을 앞둔 반장 세호와 부반장 은영. 늘씬해진 순희, 운동을 잘 했던 달봉이, 잘 생기고 씩씩했던 명호 등이 그들. 선생님은 제자들을 반갑게 맞이하지만 제자들의 눈빛은 밝지 않다. 저마다 박선생에게 받은 상처를 가지고 있는 것.
반장 세호와 부반장 은영은 가난한 집안 형편으로 손가락질을 당했고, 순희는 뚱뚱하다고 놀림 받았다. 축구 선수가 꿈이었던 달봉이는 박선생의 체벌로 장애인이 되어버렸다. 명호의 어머니는 탄원서를 썼다가 박선생에게 정신병자로 몰렸다. 겉으로는 반가운 안부를 나누지만 속으로는 과거를 전혀 기억 못 하고 자신이 자상한 교사 인줄로만 알고 있는 박선생에게 분노하는 아이들. 그러나 이 두려운 만남을 지켜보는 또 다른 누군가가 있었다. 정말 두려운 것은 스승도, 제자도 아니었다...!
극 초반에는 뭔가 어색한 사제관계가 으스스하다. 모두들 학창 시절 선생님에게 상처를 받았고 그것이 트라우마로 남은 이들. 스승의 날이기는 하지만 분노를 가슴에 담은 제자들은 직간접적으로 적의를 드러낸다. 그런데 영화 중반부부터 제자들이 하나 둘씩 살해 당한다. 걷지 못하는 스승은 아닐테고, 아마도 어릴 적 제자들이 놀려대던 선생의 아들로 추정되는 토끼가면인 듯 하다. 수법도 잔인해서 잘려진 커터칼을 입에 넣고 끓는 물을 붇는다던지, 스태플러로 눈을 다 막아버린다. 자, 제자가 스승을 죽일 것인가. 스승의 아들이 그들을 죽일 것인가. 서로 물고 물리는 관계가 심플하면서도 궁금증을 유발한다.
뜻밖의 반전은 이 모든 것이 선생님을 모시고 살았다던 미자(서영희)의 복수였음이 밝혀지면서 끝이난다. 사실 학생들이 받았다던 학대는 모두 미자가 받은 학대였다. 영화 내용이 사실은 미자가 경찰에 거짓으로 진술한 내용으로, 실제 학생들은 모두 성공한 인물들로 매년 스승의 날에 모이는 이들이었던 것이다. 유난히 학대받았던 미자가 이들을 살해했다는 내용으로 나름 신경 쓴 시나리오다.
다만 몇가지 회수하지 못한 떡밥과 논리적인 비약이 보인다. 먼저, 극 초중반에 등장했던 토끼소년의 정체와 이후의 상황이다. 어린시절 토끼소년이 있는건 맞는데, 왜 미자가 토끼 가면을 쓰고 학생들을 죽였는가는 알 수 없다. 사실 실질적인 가해자는 선생 한명이고 아이들은 철없이 웃었을 뿐인데 그들을 모두 죽일 필요가 있었을까. 또, 어린 시절의 토끼 소년은 어떻게 되었을까. 엄연히 엄마인 스승이 살아있는데 말이지.
그래도 비주얼적인 공포가 상당해서 킬링 타임으로는 제법이다. 학생들이 하나하나 살해하는 장면도 그렇고. 특히나 마지막 미자가 피아노를 칠 때 파티를 하는 듯한 창 밖의 실루엣이 연주가 끝나고 무참한 독살 장면으로 넘어가는 모습은 꽤나 기억에 남는 연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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