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수레의 책읽기

[내 이름은 빨강] 동서양의 예술이 부딪히는 그 순간, 한 건의 살인

슬슬살살 2016. 8. 20. 16:28

어느 눈 내리던 밤. 술탄의 금박 세공사 한 명이 살해 당한다. 이 살인 사건을 해결해야 하는 임무는 12년만에 고향으로 돌아온 카라에게 맡겨 진다. 살인 사건을 추적할 수록, 범인을 좁혀갈 수록 이슬람 예술에 대한 의심이 더해지는 묘한 사건이다. <내 이름은 빨강>은 추리소설의 형식을 띄고 있긴 하지만 본질적으로 동서양의 문화 충돌에 관한 이야기다. 

 

그 이교도들은 단지 초상화가 그려진 것만으로 이 세상을 더욱더 많이 채우는 사람들이 되는 듯했다. 초상화가 만들어짐으로써 마법적인 무언가가 덧붙여지고 그들이 특별한 존재가 되었기에, 나는 그 그림들 사이에서 순간적으로 내 자신이 결점투성이의 무력한 인간이라는 생각이 들었지. 그들처럼 그림을 그리기만 하면 내가 왜 이 세상에 존재하는지 더 잘 알게 될 것 같았다.

 

이슬람과 서양문화권은 인접해 있기는 하지만 문화적으로는 상이한 성질을 지니고 있다. 그림의 예를 들어보자. 서양화의 가장 큰 발견은 원근법이다. 원근법은 소실점을 탄생 시켰고 먼것을 작게 그리는 놀라운 그림을 탄생 시킨 것이다. 일견 당연해 보이는 이 조건이 왜 엄청난 발견일까. 과거의 예술은 종교적인 역할을 주로 담당했다. 신을 찬양하기 위해, 신을 퍼뜨리는 수단으로. 그런데 원근법은 작가를 중심으로 세상을 바라본다는 의미다. 가령, 멀리 있는 교회 첨탑의 십자가를 작게 그린다는 불경(?)을 저지르고 신의 대리인인 술탄도 그림 중심에 있을 수 없다. 개인의 개성을 표현하거나 실물을 그대로 옮기는 초상화 같은 건 도저히 받아 들일 수 없다.

 

진정한 화가와 재능 없고 신앙심 없는 화가를 구분하는 유일한 판단 기준은 없다네. 그것은 시대에 따라 변하지. 그러나 화가가 우리의 예술을 위협하는 악에 대항하기 위해 어떤 윤리와 기법을 따르는가는 중요하지.

 

소설의 배경이 되는 1591년의 이스탄불은 아직 종교가 예술을 지배하던 시대다. 때문에 이슬람의 세밀화는 개인의 스타일을 배척하고, 인간 중심의 예술을 불경하게 생각한다. 세밀화가들은 전통적인 방식에 따라 얼마나 옛것을 그대로 그리느냐가 중요하다. 세밀화가 몇이 베네치아에서 서양식 초상화를 보고는 충격에 빠진다. 전통적인 사고가 새로운 문명을 만날 때의 충격이다.

 

술탄은 내게 서둘러 책을 제작하라고 명령했지. 나는 너무나 행복해서 현기증이 일 정도였다. 술탄께선 책이 완성되는 시점을 헤지라 천 년이 되는 해로 정하고, 그때 나를 다시 베네치아로 파견해 베네치아 총독에게 그 그림을 선물로 줄 계획이셨다. 이슬람 세계의 최고 통치자인 술탄의 힘의 승리를 베네치아 총독에게 확실하게 보여 주길 원하신 게지. 그러나 술탄은 베네치아인들에게 줄 그평화의 선물을 비밀에 부치도록 하셨고 아울러 화원 내에서 시기심이 조장되지 않도록 책의 제작에 관해서는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라고 명하셨다.

 

술탄은 세밀화원장 에니시테에게 밀명을 내린다. 베네치아에 책을 선물함으로서 이슬람의 위대함을 알리겠다고. 여기에 들어갈 세밀화들은 각각 최고의 장인들, 나비, 황새, 올리브에게 맡겨진다. 에니시테는 그 누구도 책의 전체를 알 수 없도록 세심하게 작업한다. 그들은 이 책에 서양의 기법을 조금씩 담아낸다. 이를 알아챈 금박 세공사 엘레강스는 이런 변화를 외부에 알리겠다고 작업자중 한명을 협박하고, 살해 당한다. 살인자는 누구인가. 나비? 올리브? 황새? 아니면 에니시테?

 

내용과 메세지, 필력 모두 훌륭하지만 무엇보다 구성의 독특함이 가장 먼저 다가온다. 59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매 장마다 다른 화자가 이야기 한다. 이 방식으로 이야기가 굉장히 압축되어 있어 몰입도를 높인다. 물론 유사한 방식들을 사용하는 작가들 - 베르나르, 무라카미 하루키 등등 - 도 있지만 오르한 파묵의 방식은 이보다 더 대담하다. 각 장은 '나는 OOO이다'라는 제목으로 이루어져 있다. 중세의 초상화 처럼. 그 OOO은 이야기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일 수도 있지만 에스테르 처럼 주변인 일 수도 있고, 어떤 때에는 개나 악마의 그림이기도 하다.

 

독특한 방식으로 표현 된 글 안에서 살인 배경에 묻어 있는 두 문화권의 충돌. 예술가의 고뇌를 접하다 보면 어느덧 살인자가 누구인지 하는 궁금증조차 잊고 이야기에 몰입하는 나를 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이야기의 또다른 중심, 아름다운 세큐레와 카라의 러브스토리 또한 흥미진진하고 긴장감 넘친다. 새로운 문화에 공격을 몸으로 받아내며 자괴감을 느끼는 옛 장인들의 운명이 소설 전체에 배어 있어 슬프기도 하다.

 

"그림과 장식, 그리고 아름다운 책을 좋아하는 칸과 샤, 술탄들의 애정은 세 계절로 나눌 수 있지. 이들은 첫 계절에는 대담하고, 열정적이고, 호기심이 많지. 이 통치자들은 존경을 받고 싶어서,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바라보는 방식에 영향을 주기 위해서 그림을 원하지. 이때는 그들이 스스로 배워나가는 단계라네. 두 번째 계절에 접어들면 즐거움을 얻기 위해 책을 만들게 하지. 진심으로 그림 감상을 즐기기 때문에 열성적으로 책을 수집하고, 그 때문에 사후까지 자신들의 명성을 지켜나갈 수가 있게 되지. 마지막 세 번째 계절, 인생의 가을에 접어들면 그 어떤 술탄도 속세에 남겨지는 불후의 명성에 관심을 갖지 않게 돼. '세속적 불멸'이란 후세에 기억되는 것을 의미한다네. 세밀화와 책을 좋아하는 통치자들은 우리 화가들에게 자신의 이름이 들어가 있는 책들, 그들 자신의 역사를 기록한 책들을 제작하게 함으로서 이미 이승에서의 불멸은 얻었거든. 하지만 늙고 보니 저세상에서 좋은 자리를 얻는데 그 그림들이 오히려 걸림돌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걸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