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멜리 노통브의 소설은 읽을 때 약간의 현기증을 동반한다. <이토록 아름다운 세살>은 이 현기증이 조금 더 과하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아이의 몸을 빌어 태어난 '신'이다. 모든 아이는 스스로를 중심으로 돌고 있는 우주 안에서 신이다. 전능하며, 절대적이다. 불가능이라는 표현 대신 스스로가 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아멜리 노통브의 이 작품 내의 세살짜리 꼬마는 남들보다 조금 늦었을 뿐 자신에게 일어나는 모든일을 보고 사고한다. 물론 그녀는 '신'이기 때문에 인간계의 일들, 예를 들면 진공청소기나 초콜릿 같은 것을 알지 못한다. 그래서 그것들을 처음 접할 때 꼭 세 살짜리 아이처럼 보이지만, 본질적으로 그녀는 '신'이다.
아멜리 노통브가 일본에서 자란 기억을 되살려 쓴 이 자전적인 소설에서 이 세살짜리는 엄마-아빠-진공청소기-줄리엣(언니)-니쇼상(일본인 유모)-죽음-바다 순으로 새로운 단어들을 익혀 나간다. 이 언어의 형상화 과정에서 벌어지는 삶의 단편들 - 할머니의 죽음이나 일본에 대한 인식 같은 것들을 통해 세 살짜리 아이의 성장을 그녀의 눈높이에서 바라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외교관이면서 일본 전통문화인 '노'를 수련하는 아버지, 전쟁 직후 백인에 대한 적개감을 불태우는 일본인과 친절한 일본인과 같은 메타포들은 이 세 살짜리의 인격이 어떤 식으로 형성 되어 가는지를 보여 준다.
물론, 부모님이 무슨 고민을 하셨는지, 친구들과 어떤 얘기를 나누셨는지 등등은 내가 기억 못한다. 하지만 기억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 - 내가 수영을 배우던 호수의 푸르름, 정원의 향기, 몰래 맛본 자두술의 맛, 이밖에도 다른 지적 발견들-은 하나도 잊어버리지 않았다. 화이트 초콜릿 이전은, 기억나는게 하나도 없다. 그래서 친인척들의 증언을 듣고 내 나름대로 재해석할 수밖에 없다. 화이트 초콜릿 이후는, 내가 직접 수집한 정보들이다. 글을 쓰는 손, 바로 이 손이 수집한 정보이다.
3년. 이 소녀가 태어나서 자란 이 짧은 시간 동안, 사랑하는 할머니를 통해 죽음을 배웠고 일본인 유모들로 인해 사랑하거나, 사랑받거나, 미움 받는 법을 배운다. 그리고 본인은 자살이라 생각하는 죽음까지도. 스스로를 신으로 믿으며 사고까지도 자신이 원해서 그리 된 일이라 생각하는 이 영악한 아이의 기억이 '이토록 아름다운지'. 맑은 호수 위를 두둥 떠 있는 소녀의 모습에서 뭉클한 그리움을 느낀다. 그리움은 상상을 넘어서 나의 어린 시절에까지 이전한다.
이따금씩, 내가 꿈을 꾼 것은 아닌지, 그때의 결정적인 사건이 환상은 아닌지, 긴가민가 할 때가 있다. 그러면 나는 거울에 가서 내 모습을 비쳐본다. 왼편 관자놀이에, 생생한 웅변으로 말하고 있는 흉터가 보인다. 이후로는, 더 이상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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