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런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을 우리는 소시오패스라고 부른다.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동정심, 공감능력 등등을 갖추지 못한 이런 인간들은 냉혹한 살인자로 그려지는게 보통이다. 하다못해 살인은 저지르지 않더라도 차갑고 인간적이지 않은 면모가 강하게 드러난다. 예를 들면 '데미안'처럼. 그렇지만 인간실격의 주인공 요조는 인간성을 상실했지만 역설적이게도 너무 인간적이다. 고통이나 동정, 불쌍함 등의 감정을 전혀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거꾸로 그들이 나를 사랑한다는 사실 조차 알지 못한다. 그래서 두렵다. 그들이 자신을 고통스럽게 할지도 모르기 때문에 가면을 쓰고 살아간다.
한마디로, 알지를 못하는 겁니다. 주변 사람들의 고통의 성질이나 정도를 도무지 짐작조차 못 하는 겁니다. 현실적인 고통, 그저 밥만 먹으면서 살 수 있다면 해결되는 고통, 하지만 그것이야말로 가장 지독한 고통이며 내가 가진 열 가지 불행 따위를 단번에 날려 버릴 정도로 처참한 아비규환의 지옥인지도 모릅니다. 사실 잘 모르겠습니다.
주인공은 작가 다자이 오사무의 투영이다. 실제로 다자이 오사무는 정신적인 고통을 받다가 수차례 자살을 기도 했고 결국 젊은 나이에 죽는다. 이러한 정신적 외로움과 삶에 대한 비관적인 태도, 냉소적인 자세같은 것들이 전후세대의 정서와 딱 맞아 떨어지면서 세기의 명작이 탄생했다.
"그나저나 네 여성 편력도 이쯤해서 끝내야지? 더는 세상이 용납 못해." 세상이라니 어떤 세상을 말하는 걸까요. 인간의 복수형을 말하는 걸까요. 대체 어디에 그 세상이라는 것의 실체가 있단 말인지. 어쨌거나 강하고 모질고 무서운 곳이라고만 생각하며 지금껏 살아온 그 세상인데, 호리키의 말을 듣자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네가 말하는 세상이란 건, 널 말하는거 아니야?'
요조는 나름의 금수저 집안에서 태어난데다 대학까지 다닌 엘리트지만 천성이 소시오패스인지라 세상을 두려워하며 성장한다. 그 어느것에도 흥미를 가지지 못하고 어디에도 열정을 가지지 못하는 요조는 그야말로 바닥까지 망가진다. 망가진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삶에서 의미를 찾지 못하는 삶이다. 그야말로 인간실격. 작품 중 가장 가슴을 때리는 말.
세상이란 개인이다
그렇다. 세상은 개인이다. 가끔 쳇바퀴처럼 사는 삶 속에서 완벽한 무기력함을 느낄 때가 있다. 가만히 내면을 들여다 보면 너무나 작고 왜소하다. 찰나의 시간만큼 짧은 생애, 죽어봤자 세상에 어떤 생채기도 낼 수 없다는 무력함이 삶을 아무것도 아닌것처럼 느껴지게 하는 순간이 있다. 보통은 잠깐의 망상을 거쳐 깨어나는게 일반적인데 요조는 그것이 평생의 감정이라니 불쌍하면서 무섭다.
"감옥에 갇히는 것만이 죄가 아니야. 죄의 반대말을 알게 된다면 죄의 실체도 알 수 있을 것 같은데...... 신......, 구원......, 빛....... 하지만 신한테는 사탄이라는 반대말이 있고, 구원의 반대말은 고뇌일테고, 사랑은 증오, 빛은 어둠이라는 반대말이 있고, 선은 악, 죄와 기도, 죄와 후회, 죄와 고백, 죄와... 아아, 죄다 비슷한 말이네. 죄의 반대말은 대체 뭔거야?"
죄의 반대말은 벌이다. 도스토옙스키가 찾아낸 단어다. 그 단어를 찾아낸 요조는 결국 정신병원에 갇힌다. 그것으로 끝. 죄의식을 가질 수 없는 인간 요조는 세상에서 실격당한다. '나'는 과연 어떻게 구성되는가. 본질적으로 다른 한 인간의 생애를 통해 인간성에 대한 생각을 이끌어 낸 독특한 작품이다. 역설을 통한 본질의 탐구라는 측면에서 보면 파괴를 통해 영원을 그려냈던 <금각사>와 그 궤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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