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수레의 책읽기

[마이더스] 거장의 수준미달 할리퀸

슬슬살살 2017. 6. 24. 10:02

말랑말랑하고 세련된 일본 작가들이 한국에 진출하면서 주춤하게 되기는 했지만, 한때 '시드니 셀던'이라는 이름은 '미국 대중문학'의 대표자였고 내놓는 책마다 불티나게 팔렸다. 다작을 하는 터라 작품의 질이 일정치 않기는 하지만 아주 후진 작품도 가벼운 추리소설 이상은 가는 편. <마이더스>는 젊은 부자 상속녀와 그 재산을 노리는 다른 여성의 이야기다. 할아버지의 대역을 만들어내는 음모, 배다른 손녀일지도 모른다는 복선, 젊고 멋진 기업가. 흔해빠진 설정들을 가지고 맛깔나는 이야기가 완성 됐다. 하이틴 소설에 가까워서 손발이 오그라드는 장면들이 좀 있기는 하지만 복고 느낌이 나쁘지 않다.


재밌는 건 80년대 미국에서의 연애상이라는게 지금 한국과 비슷한 점이 많다는 것. 남자가 돈 많고 잘생겨야 한다거나, 여성을 보호하는 기사도, 백마탄 왕자, 노력보다는 신분 등등. 거꾸로 말하면 문화적인 레벨이 미국보다 3~40년이나 뒤지는 셈이다. 지금의 미국 문화에서 주도적이지 않은 여성이 어디 있는가. <마이더스>의 똑똑한 여주인공은 무능하지는 않지만 다짐만 할 뿐 실제적인 문제해결은 남성에게 맡기는 수동적인 여성이다. 다시 생각하면 지금 사회가 요구하는 여성상이라는게 탄샌한게 불과 얼마 되지 않았다는 것. 사회적 분위기가 급변하게 변할 수록 가까운 과거의 장르물들은 유치하게 될 수 밖에 없다.


"내가 출현했던 영화에서는 이 스키가 불에 타서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지금 여러분이 직접 보고있는 이 스키는 분명히 진품입니다. 이것이 바로 영화의 마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똑같은 스키의 모형을 미리 만들어 놓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막상 불에 타는 장면을 촬영할 때에는 그 모조품을 태우는 겁니다. 그것은..."


작중에서 스키 기증이라는 재료를 통해 소설 전체의 복선을 깔지만 유치한 방식이다. 시드니 샐던이라는 이름을 빼고나면 할리퀸중 하나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수준 미달의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