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수레의 책읽기

[M] 공포 드라마의 효시, M을 다시 읽다.

슬슬살살 2017. 8. 15. 10:55

훌륭한 문학 작품이 영화나 드라마로 성공적으로 재탄생하는 경우는 있지만 그 반대는 없다. 단언컨데 단 한 건도. 뚜렷한 이미지를 전달하는 영상에 비해 활자는 읽는 이 스스로가 이미지를 구축하게 하기 때문이다. 간혹 히트를 친 드라마나 영화가 다시 책으로 나오는 경우가 있는데 문학적 가치는 제로에 가깝다. 그저 영상에서 받았던 이미지를 글로 소장하는 개념일 뿐이고 실제로도 시나리오를 산문으로 바꾼 것에 다름 아니다.


94년도, 당시 청춘스타 심은하를 '연기자'로 바꾼 M의 인기는 그야말로 대단했다. 치정물, 정치물, 사극만 있던 드라마에 '공포'라는 키워드는 새로운 시도였고, 결과는 대 성공.  수많은 패러디가 이어졌고 시청률 또한 고공행진했다. 장르물이라는 특성도 먹혔지만, 동성애, 낙태, 에볼라 바이러스 같은 그 당시 트렌드 키워드를 잘 버무린 것도 성공 요인이다. 물론 이제와서 보면 개연성이 떨어지는 유치한 스토리지만 당시 최고 수준의 CG와 촬영 기술등은 충분히 공포를 전달했다. 소설 'M'은 이 드라마의 시나리오 그대로로, 소설로서의 가치는 없지만 당시 드라마를 떠올리는데 좋은 역할을 한다.



먼저 M이 뭔지부터. M은 일종의 기억분자다. 마리(심은하)가 태어 날 때 옆 수술실에서 낙태된 태아의 기억이 마리에게 옮겨 간 것. 귀신의 빙의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이 M이라는 녀석은 파괴적인 에너지를 가지고 있으며 에볼라 바이러스의 숙주 역할도 한다. 에볼라와 낙태가 무슨 관계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M은 그녀가 아직 태아였을 때 수술 도구에 의해 그녀 안에 유입된 기억분자이다. 이 기억분자  M은 엄청난 파괴 에너지를 가졌다. 마리의 인격은 3인의 교차인격으로 형성되어 있다. 첫번째는 본래 마리의 인격. 두번째는 내가 만들어 준 의사 주리의 인격, 그리고 세번째 인격이 문제이다. 나는 그 수수께끼의 인격에다 M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거기에 더해 마리는 한개의 인격이 더 있다. 주리라는 만들어진 또 하나의 인격. 신인이던 심은하는 마리와 주리, M까지 이르는 세가지 인격을 훌륭히 소화했다. 여기에 더해 M에 인격과 성별을 부여하는 시도도 있었다.


"은희, 너는 내가 만난 인간들 중에서 가장 착한 여자야. 네가 천사의 마음을 가졌다면 난 악마의 심성을 가졌어. 그렇지만 악마와 천사는 서로 사랑할 수 없을까? 인간의 역사는 악과 선의 끝없는 싸움이었지 그렇지만 악과 선이 대립이 아닌 조화를 이룰수는 없는 것일까?"


당시 엄청난 충격을 남겼던 은희(김지수)와 M(심은하)의 키스신은 20년이 지난 지금도 방송이 불가능한 장면이다. 그러고 보면 방송 기술은 늘어났지만 수위는 한 발자국도 앞으로 가지 못했다. 낙태를 반대하는 이슈를 전면에 내세웠던 시대적인 배경도 재미있다. 말도 안되는 초능력의 발현, 남자친구의 희생으로 마무리하는 구태적 결말은 다소 가볍거나 유치하게 느껴지지만 머릿속에 박힌 심은하와 M의 이미지는 읽는 내내 드라마 다시보기를 머리속에서 돌려주었다. 94년, 노란 장판에 선풍기 하나 덩그러니, 그리고 메로나 하나 빨며 드라마에 빠져들던 그 때 여름으로 되돌아 간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