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삼매경

[해빙] 진실의 빙벽이 녹은 후에

슬슬살살 2018. 9. 25. 09:13

스릴러 영화라고 생각되지만 사실은 날카로운 메스를 사회에 들이대는 영화다. 다문화가정, 학교 폭력, 직업에 대한 색안경 벗기기, 물질만능주의 등 우리 사회의 외면하고픈 단면들이 적나라하게 드러나서 불편한 영화다. 또한 푸른 기운이 가득 담긴 장면장면이 주는 임팩트가 상당한데, <미드나잇 미트트레인>이나 <호스텔>을 떠올리게 한다. 버스를 타고 서울 외곽에서 출퇴근 하는 모습이나 하숙집 인근 놀이터 장면이 주는 차가움은 뼛속까지 시린 느낌을 준다.



영화는 세 단계로 나늰다. 조진웅(승훈)의 시점에서 바라보는 불편한 세계. 조진웅(승훈)을 의심하는 단계. 두 명의 살인자가 공존하는 세계. 두번째 단계가 늘어지면서 지루한 걸 빼놓고는 전체적으로 잘 만들어진 영화다. 스릴러 장르로서도 충분한 재미를 주는데 일단 흩어져서 일어난 범죄 행위를 승훈에게 모조리 뒤집어 씌우고는 빠져나가지 못하게 하는데서 오는 답답함이 영화의 백미다. 감정 이입을 잘 하는 케이스라면 그야말로 고통체험. 2건의 살인, 프로포폴 거래를 모조리 뒤집어 쓰지만 정작 승훈이 저지른 건 단 한 건의 살인 뿐이다. 용서받을 일은 아니지만 정작 연쇄살인마와 프로포폴을 빼돌리는 간호사가 멀쩡한 걸 보면 울화통이 터진다. 특히 승훈에게 나름의 호감을 가졌던 간호사 미연(이청하)이 안면을 바꾸는 장면은 묘한 이질감과 함께 관객을 제정신으로 돌아오게 만든다. 이 경험이 상당히 재밌는데 예쁜여자=우리편 이라는 영화공식을 깰 뿐 아니라 현실을 다시 쳐다보게 만드는 각성 효과까지 있다. 그런 미연이 다루는게 프로포폴이라는 건 감독이 노린걸까. 정육점이라는 공간이 주는 공포도 그렇고 나긋나긋하게 이야기하는 정육점 주인의 톤도 공포를 극대화 시킨다. 어쨌거나 분위기를 몰아가는것 만큼은 탁월한 영화다.


<살인자의 기억법>에서도 나이든 연쇄살인마가 나온다. 또, 이중인격에 따른 환각을 본다는 설정도 수백가지의 영화가 나와 있을터다. 진범 대신 잡혀들어가는 케이스도 말하면 입아프다. <해빙>은 스릴러라는 측면에서 잘 만들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렇지만 이 영화가 주는 차가운 분위기만큼은 상당하다. 푸른 귀기 어린 장면이 승훈의 답답함과 외로움을 고스란히 전해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