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수레의 책읽기

[토끼 바위산] 어설픈 피해 의식이 만들어 낸 괴작

슬슬살살 2020. 4. 4. 16:01

남북 통일이 코 앞에 다가온 날, 한국과 북한, 일본과 중국에서 동시에 쿠데타가 일어나 유럽 공동체에 대항하는 연합체를 구성한다. 


허황된 시나리오지만 이 책이 쓰여지던 당시(1993년도)에는 나름 그럴싸한 음모론 중의 하나였다. 93년은 소련이 해체한지 2년밖에 되지 않았고, EU는 EC라는 유럽연합으로 출범을 준비중이던 상황이었다. 당연히 미국을 능가하는 거대 연방국가가 태어나는게 아닌가 하는 우려가 있었다. 게다가 중간 완충지 역할을 할 소련이 부서진 상황이라 유럽연합이 경제적인 침략자가 된다는 얘기가 운동권을 중심으로 퍼지고 있었기도 했고. 지금에 와서 보면 너무나 어이없어 보이지만 당시 한국은 급속한 경제발전을 따라가지 못하는 문화적 역량으로 일본과 홍콩에 문화 종속을 우려하는 상황이었다. 그에 대한 반대급부로 우리문화를 의미하는 신토불이 운동이 펼쳐지기는 했지만 캠페인식으로 이루어져 젊은 층에게 오히려 반감만 샀다. 우리건 역시 촌스러워 하는... K-pop부터 영화, 드라마로 전 세계를 씹어먹다시피 하는 요즘에 보면 상상도 못할 일이기는 하다. 


일본이 한국에 공장을 다시 짓기 시작한 것은 북한의 김일성 정권이 군사 쿠데타로 허물어지고 난 후 부터이다. 배터리, 플라스틱, 화학비료, 정유공장, 자동차 공장 등이 한국으로 몰려 오고 있는 중이다. 과거에는 고임금으로 진출했던 공장도 철수시켰던 일본 공장이 세계 불경기으 여파로 실업자가 늘어나자 저임금으로 다시 한국인을 사용하게 됐을 뿐만 아니라, 일본에서는 원성 높은 공해산업을 한국으로 집중 이전하려는 중이다. 


어쨌거나 그런 배경, 김일성의 사망 등이 겹친 1993년 한국이 혼란의 시기임은 부정할 수 없었고 바야흐로 헬조선의 냄새가 스물스물 올라오던 시기, 문화적인 자존감은 한없이 낮은 상황이었고 숙적 일본은 선진국으로 인식되고 있다. 상대적인 피해 의식은 일본에 문화적인 종속을 우려하던 상황이 이런 괴작을 만들어냈다. 


첩보물이라고는 하지만 위에서 말한 여러 정치적 상황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등장하지 않고 그냥 우연히 쿠데타 명단을 입수한 3류 잡지 기자가 이걸 세상에 공표하는 정도의 작은 모험을 다루고 있다. 아름다운 여성 첩보원, 검사, 고문, 전문가들을 줄줄이 등장 시키지만 이야기를 흥미롭게 엮을 역량은 없는 작가다. 유치하기 짝이 없는 소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