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수레의 책읽기

[대도] 인생을 낭비한 죄

슬슬살살 2021. 2. 10. 21:17

진짜로 영화 같은 삶을 사는 사람들이 있다 소설가 백동호는 그 중에서도 대표적인 인물이 아닐까 싶다. 전직 금고털이, 쌍둥이 형의 이야기를 통해 '실미도'를 써낸 작가. 한 줄의 필모그래피만 봐도 범상치 않다. <대도>는 이런 백동호 작가의 자서전 적인 성격의 글이다. 젊은 시절 잘나가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냐마는 어린 시절 부모에게 버림 받고 그야말로 저 밑바닥에서 박박 기어다니다 금고털이로 범죄자의 삶을 산 백동호에 비하면 누구나 어린아이일 수 밖에 없다. 하나밖에 없는 가족인 형도 범죄자가 되었는데 마흔이 넘어 형을 만난 후에 회개하고 제대로 된 삶을 시작한다. 그리고 나서 처음 쓴 소설이 이 <대도>고 두번째가 <실미도>다. 글을 잘 쓴다고 볼 수는 없지만, 진솔하고 흡입력이 있다. 머리도 상당히 비상한 듯 하다. 


첫 째, 좋은 부모, 좋은 환경에서 태어나지 못했던 것이 이유일 수 있다. 둘 째, 무슨 짓을 해서든 부자로 살면 된다는 잘못된 욕망과 가치관이 있었다. 셋 째,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란 탓으로 생겨난 강팍한 심성과 그것에 대한 열등의식으로 자기과시와 허영심이 많았다. 넷 째, 오랜 범죄생활로 인해 마음이 황폐해졌으며 모든 죄악의 근원인 권태와 게으름이 몸에 익었다. 


범죄자에서 일반인으로 새 삶을 시작하고 나서 백동호는 자기 자신의 문제점을 정확히 분석한다. 재미있는 것은 지금의 하류인생을 산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이 아마 저런 생각들을 가지고 있지 않을까?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글 중에 가난한 동네와 부자 동네는 배달기사를 대하는 태도가 다르다는 글이 있었다. 일반적으로 가난한 사람들이 동병상련이라고 친절할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것. 강팍한 심성과 열등의식은 더욱더 사람을 코너 속으로 밀어 넣는다. 
"너는 인생을 낭비한 죄로 사형에 처한다."


누명이라고, 살인을 저지른 적이 없다고 무죄를 주장하던 빠삐용이 판사의 판결 이유를 듣고는 잠시 멍하니 그들을 바라봐. 그리고는 수긍하는 눈으로 그들 모두를 향해 고개를 끄덕이며 말하지. '그렇다. 유죄다. 나는 유죄다.' 인생을 남비하며 살아가는 나는, 아무리 다른 분야에서 성공을 했다 해도 결국은 실패한 인생이야.


실패한 인생이라고 하지만 형을 만난 후에 남은 삶을 다시 정리하려 한다. <대도>는 백동호가 구두닦이, 앵벌이를 거쳐 뒷골목 대장으로 금고털이로 다시 손을 씻는 과정을 무협지 같은 형식으로 써내려 간 글이다. 영웅심리도 녹아 있어 무협지 일듯이 쉬이 읽히지만 은연 중 베어있는 자기과시와 마초스러움이 눈에 거슬린다. 


순전히 요망사항이지만 앞으로 삼십년간 제가 행복한 삶을 산 후에 평화로운 죽음을 맞이한다면 저의 묘비명은 이랬으면 합니다. '축복받지 못하는 생명으로 태어나 참담한 어린 시절을 보냈고, 예정된 어둠의 시궁창을 살아왔으나, 인생을 긍정적으로 보았고 끝내 행복을 찾았던 사람'


그래도 이런 기회를 통해 어둠의 세계를 살짝 엿보는 건 재밌는 일이다. 실제로는 불행한 일이지만 남자중에 어둠의 세계를 상상해보지 않은 이가 누가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