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피플 / 비행기-혹은 그는 어떻게 시를 읽듯 혼잣말을 하였는가 / 우리들 시대의 포크로어-고도 자본주의 전사 / 가노 크레타 / 좀비 / 잠
무라카미 하루키의 초기 단편 선집이다. 젊은 시절의 하루키는 무척이나 날카롭고 염세적이었구나 하고 느끼게 하는 작품들이다. 마치 마약에 취한 것처럼 몽환적인 느낌의 표제작인 <TV피플>은 무력함에 빠진 현대인을 관능적으로 그려냈다. 아마 소설이 미술이라면 하루키는 칸단스키일꺼다. 수많은 기호를 이용해 또렷하게 그려낸 환상들. 이상하게도 하루키의 소설을 읽다보면 어떤 색깔이 느껴진다.
무서워할 것 없어, 유령은 아무 짓도 할 수 없으니까. 목을 틀림없이 잘라 두었고, 피도 다 뺐어. 자지도 세울 수 없다고
가학에 가까운 묘사도 하루키의 펜을 거치면 기호학이 되어 버린다. TV피플이 미디어를 이용해 인간을 옭아매는 소악마라면, 비행기는 이루어지지 않는 이상이다.
어째서 또 하필이면 비행기란 말인가.
이 비행기는 전혀 비행기처럼 생기지 않았지만 비행기이며 종국에는 비행기라고 믿게끔 만들어진다. 만들어진 희망, 젊은 시절의 하루키가 바로 본 세상은 꿈 마저 거짓일 정도로 기망된 세상이었다.
15분 정도 꼼짝 않고 본다. 머리를 텅 비우고.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다. 자신의 얼굴을 순수한 물체로써 뚫어져라 쳐다본다. 그러면 내 얼굴이 점차 내 자신으로부터 분리되어 간다. 그저 순수하게 동시에 존재하는 것으로써. 그리고 나는 이것이 현재라고 인식한다. 발자취 따위 관계 없다. 나는 이렇게 지금 현실과 동시에 존재하는 것이다. 그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다, 라고.
하루키는 수많은 단편을 통해 니체처럼 자신의 내면을 관찰하고 존재의 이유를 찾아나간다. 하지만, 하루키가 찾아낸 이유란 건 비행기처럼 공허하고 기계적인 것들 뿐이다. 목이 잘린 유령은 더이상 아름답거나 매력적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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