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스티븐 킹이다. 나이가 나이인지라 젊은 시절의 재기발랄함은 없지만 차곡차곡 쌓아올려가는 이야기 구성능력은 여전하다. 이 소설은 전형적인 음모론 클리셰를 따르고 있다. 인류 중 일부가 타고나는 미약한 초능력자와 이들을 이용한 국가 정보세력. 이 과정에서 짓밟히는 소수 초능력자들의 인권과 그들의 반란까지.
인구의 0.5퍼센트도 안 되는, BDNF가 아주 높은 소수의 사람들은 전 세계를 통틀어 가장 축복받은 행운아였다. 핸드릭스의 말로는 조물주가 인간을 창조했을 때 의도하신 바가 그들이라고 했다. 그들은 기억력 저하나 우울감이나 신경병증성 통증을 거의 겪지 않았다. 거식증과 폭식증을 유발하는 극단적인 영양실조나 비만으로 고생하는 경우도 거의 없었다. 사회성이 뛰어났고 문제를 일으키기보다 해결하는데 능하며 강박증과 같은 신경증에 잘 걸리지 않았고 언어구사력이 뛰어났다. 두통은 어쩌다 한 번 있는 일이었고 편두통은 거의 모르고 지냈다. 식습관과 상관없이 콜레스테롤 수치가 낮았다. 수면 사이클이 좋지 않은 경우가 많았지만 수면 보조제를 먹기보다 낮잠으로 해결했다.
인류의 0.5퍼센트가 두가지 중 하나의 초능력을 타고난다. 남의 생각을 읽는 TP와 물건을 옮기는 TK인데 개개인의 능력은 매우 미약해서 가장 뛰어난 친구가 상대방이 집중했을 때 간신히 생각의 편린을 캐치하거나 작은 물건을 떨어트리는 정도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들을 다수를 모아내면 그 힘은 어마어마해져서 멀리 떨어진 사람을 죽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힘을 소모하는 아이들은 점차 폐인이 되어서 죽어나간다. 이들 비밀집단은 다른 특별한 예지 능력자들을 통해 미래의 범죄를 알아내고 예비 범죄자들을 미리 없애 인류를 구원한다는 명분을 가지고 초능력 아동들을 소모시킨다.
이 아이의 어마어마한 지적 능력 때문에 수십 년동안 이어져 내려온 은밀한 작전이 이제 붕괴의 지경에 다다른 현실에 눈을 감아버릴지 몰랐다.
물론 루크라고 하는 아주 똑똑한 소년이 이 모든걸 이겨내고 시설을 탈출, 정의로운 경찰관을 만나 '악'을 물리치는 다소 밋밋한 결론이지만 영화를 보는 것처럼 박진감 넘치는 전개 덕분에 지루할 틈 없이 읽힌다. 그러면 여기서 한가지 의문이 생긴다. 아이들을 살아났지만 예지자들이 보는 암울한 미래는 그렇다면 막지 못한다는 걸까? 그렇지 않다. 베르누이 분포라는 통방식을 이용하면 예지력은 더 먼 미래를 볼 수록 맞을 확률이 떨어진다. 그렇게 먼 예지를 기다릴 틈이 없기 때문에 몇번의 짧은 예지만 믿고 먼 미래를 예측해 왔던 것이다. 결국 정의라는 명분 아래 관성적인 학살을 진행해 온것에 다름아니다.
"제 정신이 박힌 사람이라면 확률의 제단에 아이들을 제물로 바치지 않아요. 그건 과학이 아니라 미신이죠"
가끔 그런 생각을 해본다. 진짜 세계 멸망이 코 앞에 있고, 소수의 인류를 희생해야 한다면 나는 어떤 선택을 할것인가. 현실 앞에서도 인간으로 남아 있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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