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수레의 책읽기

[완전한 행복] 행복은 뺄셈이야. 완전해질 때까지

슬슬살살 2021. 9. 16. 09:22

극 초반에 나오는 '노아'의 죽음에 충격을 받고서야 이 소설의 모티브를 깨달았다. 아. 정유정은 그 끔찍한 사건을 파헤치고 싶었구나. 예전 <유퀴즈>에 그녀가 등장했을 때 자신은 '왜' 를 탐구하는 작가라고 했다. 일반인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사이코패스에게 '왜'라는 잣대를 들이대어 적어도 이해 가능하게 만드는 것이 정유정의 글쓰기 방향이다. 
악인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주인공은 화자가 아니다. 단 한 번도 이야기 전면에 등장하지 않는다. 주인공의 입에 지퍼를 채워 커튼 뒤에 세워둔 셈이다. 


그렇기 때문에 <완전한 행복>은 주인공을 통해 이야기 하지 않는다. 이러한 방식은 전작에서도, 작품 안의 여러 방식에서도 드러나는데 등장인물 주변의 관찰자들을 통해 디테일하지만 파편적인 정보를 전달하고 그것들을 독자 머리속에서 재조합시켜 사건의 실체를 알아채게 만든다. 세상을 바라보는 여러 시선으로 사건을 인식하는 것. 정유정의 소설이 숨막히도록 몰입감이 강한 이유다. 


"행복은 뺄셈이야. 완전해질 때까지, 불행의 가능성을 없애가는 거"


이야기의 모티브가 된 고유정은 전남편 살해에 있어서만 유죄 판결을 받았고 그 외 사건들(전남편의 아이)에서는 증거 불충분으로 무죄를 받았다. 정유정은 심증 가득한 이 사건을 소설이라는 형식을 통해 끔찍한 사이코패스를 '창작'했다. '유나'의 이유를 작가는 행복 추구에서 찾았다. '유나'는 끊임없이 자신의 행복을 추구했고 그 과정에 필요치 않거나 방해가 되는 것은 가차 없이 제거하는 여자다. 심지어 자신의 아이까지도 그 행복 기준을 맞추기 위해서 존재한다. 

 
유나는 삶의 매 순간에 몰입하는 여자였다. 그 바람에 감정적 항상성이 유지되지 않았다. '이리 와'와 '저리 가' 사이를 무시로 오갔다. '이리 와' 시간에는 천사였고, '저리 가' 시간에는 미친 여자였다. 사소한 일로 트집을 잡고, 트집 잡히지 않도록 처신하면 왜 자신에게 거리를 두느냐고 화를 내고, 화를 내기 시작하면 기어코 극단까지 갔다. 자해를 하거나. 헤어질 위기도 여러 번 겪었다. 그때마다 유나는 이렇게 물었다고 한다. 네가 나한테 어떻게 이래?


그녀가 만들어 낸 '유나'는 어린 시절부터 차갑고 고집스러운 성향을 가졌고 피해자를 연구하며 주변을 가스라이팅하는데 탁월한 재능을 보인다. 이 소설에서 '유나'의 이유가 선천적인지 후천적인지는 명확치 않지만 작가는 선천성에 그 무게를 더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소설이 진실은 아닐께다. 고유정은 나름의 다른 이유를 가지고 있을테고, 진실은 더 끔찍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정유정의 '완전한 행복'은 보다 많이 알려진 사건을 분석함으로서 우리가 범죄를 바라볼 때 조금 더 인간으로 인식하는데 도움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