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삼매경

'비상선언' - 최고의 배우들과 최악의 마무리

슬슬살살 2022. 10. 2. 20:02

송상호와 전도연, 임시완과 이병헌이 등장하는 이 영화는 출연진만으로도 그 위압감이 상당하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배우들이 즐비하게 등장해 비행기 테러의 이야기를 풀어나간다는 건 최소한의 안전장치는 된 영화처럼 보인다. 하지만, 성적표는 초라하다. 205만명이 적은 숫자는 아니지만 손익분기점의 40%밖에 달성을 못했으니 심각할 정도로 망했다 보는 게 맞겠다. 인터넷을 뒤져보면 뭐가 문제인지 조목조목 나와 있기는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일관성의 부재다.

 

초반, 임시완의 파격적인 사이코패스 연기와 더불어 관객들을 압박해 나가는 서스펜스는 극 후반 갑자기 감독이 바뀌기라도 한 것처럼 이상한 방향으로 흐른다. 초반부터 범인을 공개하기 때문에 테러의 목적과 막아내야 하는 액션물로 바뀌는가 싶더니 갑자기 부산행을 떠올리게 하는 팬데믹으로 전이한다. 그러다 다시 테러물로, 국뽕 차오르는 동양 집단주의로 바뀌는 과정은 저 훌륭한 배우들의 열연을 한 순간에 무용지물로 만든다. 특히 후반 승객들이 가족에게 보내는 메시지가 나오는 장면에 이르면 감독이 서세원 씨로 바뀐 건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형편없다.. 모르긴 몰라도 출연 배우들에게는 최악의 커리어로 기록될 듯하다..

 

 

분명 이 영화는 비상선언의 정의를 내리며 극을 시작한다.

 

비상선언: 항공기의 정상적 운항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기장은 비상선언을 할 수 있고
그 어떤 법령보다 우선한다.

 

이를 보면 이 영화가 위기를 맞이한 한 명의 히어로가 비상선언을 선포하면서 겪게 되는 갈등을 다루겠거니 짐작할 수 있고 저 비상선언이 대단히 의미 있는 행위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저거 별거 아니다. 그냥 큰일 났으니 이제 현장의 판단을 우선하겠다는 의미로 명령 체계의 일원화를 의미하는 행위다. 그걸 어떤 대단한 행위처럼 포장한 것부터가 잘못된 단추의 시작이다.

 

이 영화의 80퍼센트는 꽤나 박진감 넘치면서도 촘촘한 짜임새를 가지고 흘러간다. 특별한 이유를 가지고 있을 것 같은 테러범, 무언가 있는 전직 파일럿과 현 부기장의 갈등. 승객들의 동요와 지상에서 벌어지는 형사와 관료들의 좌충우돌까지. 하지만 뭐하나 영화적인 장면은 없다. 그저 테러범은 테러를 저지르고, 국토부 장관은 비상대기하며, 형사는 범인을 잡는다. 모두가 제 할 일을 너무 열심히 해서일까. 영화적인 장면이라고는 마지막 승객들의 선택 하나뿐인데 이게 너무 판타지다.

 

그 잘못된 마무리가 준수할 수도 있었던 영화를 나락으로 떨어트렸다. 그 훌륭한 연기들을 모조리 기억에서 지우는 어설픈 마무리는 영화사에 길이길이 남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