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수레의 책읽기

‘앵무새 죽이기’ - 조금씩 조금씩, 옳은 방향으로

슬슬살살 2022. 11. 21. 21:25

인류는 조금씩이지만 옳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 귀족 제도가 있었지만 사라졌으며 늦었지만 여성에게 투표권이 주어졌다. 인종 차별은 여전히 진행 중이지만 적어도 법적으로는 평등해졌다. 모든 아동은 최소한의 기본권이 보장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이 방향성에는 희생이 따랐다. 적어도 차별의 대상자는 적게는 몇십 년,, 많게는 수천 년 동안 핍박받거나 동일한 인간의 처우를 받지 못했다. 행동하는 선각자들이 이를 조금씩 조금씩 고쳐 나가면서 과거의 과오를 바로잡는다. 1961년 퓰리처 상을 받은 이 소설은 그 선각자에 대한 현실적인 이야기다.

 

난 네가 뒷마당에서 양철 깡통이나 맞추며 익히길 바라지만, 넌 분명 새를 쫒아다니게 될 거야.. 그때에 맞출 수만 있다면 어치는 쏘아도 된다. 하지만 앵무새를 죽이는 일은 죄라는 걸 기억해야 한다.

 

스카웃과 젬 남매는 미국 남부 지방에서 변호사인 아버지 아래서 꽤 유복하게 자란다. 소설에서의 삼 년 동안은 그들의 아버지 핀치가 백인 여성을 강간한 죄로 기소당한 톰 로빈슨을 변호하면서 벌어지는 일을 다루고 있다. 그는 총을 쏘아도 되지만 적어도 그게 죄라는 사실은 알아야 한다는 식의 열린 사고를 하는 일종의 선각자다. 이상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상황을 받아들이되 도덕적 의식은 잊지 않는 현실주의자이기도 하다. 그에게 흑인이란 백인과 똑같은 인간이며, 법의 공평한 도움을 받아야 하는 시민이기도 하다. 다만, 현재의 차별을 이해 못하는 건 아니며 조금씩 바꾸어 나갈 수 있다고 믿는다.

 

그 범죄의 증거란 무엇이겠습니까. 살아 있는 인간인 톰 로빈슨인 것입니다. 그녀는 자신에게서 톰 로빈슨을 없애야 했습니다. 그는 그녀의 범죄사실을 매일 생각나게 하는 존재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녀는 무슨 일을 저질렀습니까. 바로 검둥이를 유혹한 것입니다. 그녀는 백인입니다. 그리고 흑인을 유혹했습니다. 그녀는 우리 사회에서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일을 저질렀습니다. 그녀는 흑인에게 키스했습니다. 늙은 아저씨가 아닌 젊고 건장한 흑인 남자에게 말입니다. 그녀가 깨뜨리기 전까지만 해도 그 관습은 아무 문제가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붕괴되고 말았습니다. 그녀의 아버지가 그 장면을 목격했기 때문입니다.

 

톰 로빈슨의 재판은 조금씩 현실적인 증거들이 나오면서 톰 로빈슨이 유혹당했으며 강간에 가까운 성행위는 있지도 않았다는 사실까지 밝혀지지만, 백인 위주의 시민사회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흑인에게 비우호적인 재판정으로 판결 장소를 바꾸고 수많은 백인들이 핀치 변호사를 협박한다. 그들 스스로는 이 같은 행위들이 수치스러운 행동이란 걸 알면서도 오랫 동안 흑인을 차별하는 관습을 벗어나지 못하는 모순을 보인다. 이 모순이야말로 이 소설이 고발하는 바이다. 많은 미국인이 불평등을 이해하면서도 인종차별하는 행위를 이 소설은 통렬하게 고발한다. 결국 톰 로빈슨은 교도소에서 미심쩍은 방식으로 살해당하지만 적어도 이 남부 사회는 조금 변했다. 변화는 피를 먹는 법이다.

 

그러나 이 나라 안에서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창조되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단 한 곳이 있습니다. 가난뱅이와 록펠러를, 백치와 아인슈타인을, 무식쟁이와 대학총장을 동등하게 하는 인류의 공공기관이 있는 것입니다. 신사 여러분, 그 기관은 바로 이 법정인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이 소설에서 주된 사건인 톰 로빈슨의 재판은 예상했던 결과를 벗어나지 않는다. 흑인은 유죄를 받았고, 살해당했다. 흑인들은 실망했다. 저렇게 강변했던 미국의 재판소는 여전히 시민을 평등하게 대하지 않는다. 하지만 적어도 이 재판은 메이컴 마을을 조금 더 옳은 방향으로 변화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