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학창 시절을 보낸 이들 중 슬램 덩크에 ‘꽂히지’ 않았던 사람이 누가 있을까. 속칭 ‘왜색’이 짙은 만화는 등장인물의 이름을 바꿔서 출판해야 할 만큼 규제가 심하던 시절에도 ‘슬램 덩크’는 엄청난 인기를 몰아치며 수많은 남학생들을 농구장으로 이끌었다. 한 경기를 거의 반년에 걸쳐 연재할 만큼 긴 호흡을 가지고 있는 작품이었지만 그 누구도 지루함을 느끼지 못했다. 한 번에 읽을 수 있는 단행본을 가진 친구가 얼마나 부러웠던지.
그 슬램덩크가 20여년이 지난 지금 극장판으로 돌아왔다. 그것도 무려 ‘새 에피소드’를 들고서. 강백호 대신 송태섭을 중심에 둔 이 극장판은 ‘만화’라는 한계를 넘어서 2월 27일 현재 어벤저스의 ‘앤트맨’ 신작을 바짝 뒤쫓고 있으며 곧 애니메이션 흥행 2위인 ‘너의 이름은’을 넘어서기 직전까지 올라왔다. 중장년층 남성층이 많은 작품 특성을 감안하면 정말 놀랍다. 단순한 추억팔이였다면 그저 잠깐의 인기로 끝났겠지만 ‘더 퍼스트 슬램덩크’는 작품성까지 가지고 있어 새로운 시청층까지 확보했다는 건 단행본의 인기 역주행으로도 알 수 있다.
특히 연출의 힘이 대단했는데, ‘예쁜 그림체’, ‘사실 같은’ 이 아니라 만화책을 보는 것 같은 새로운 연출이 압도적이었다. 극장에서 강백호와 송태섭을 보는데 어찌나 그리움이 몰려오던지 까딱하면 눈물을 흘릴 뻔 했다. 추억의 만화를 넘어서 정말 그 시절로 되돌려 보낸 감각은 그 어떤 영화도 줄 수 없는 감흥이다.
우리가 사이드 캐릭터로 알고 있던 송태섭이 어떤 성장기를 거쳐서 팀에 합류를 했는지, 당시 만화의 열린 결말에서 주변 캐릭터들 역시 하나의 객체로 각자의 삶을 보내고 있다는 당연한 사실이 꽤나 충격적이면서 또다른 결말을 대하게 만들었다. 빠르지는 않더라도 몇 년에 한 번씩이라도 시리즈가 나온다면 동창회처럼 반가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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