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여름: 기억하고 싶은 악몽
스톡홀름 증후군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뜻이야 많이들 알려졌다시피 인질범이 자신을 붙잡은 범인의 심리상태에 동화된다는 뜻인데 대부분 인질범을 인간적인 차원에서 이해하거나, 용서하는 정도로 이해 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독일 작가 테아 도른이 쓴 이 책은 한 때 연쇄살인마에게 납치 당했던 율리아라는 여인이 쓴 형태를 취하고 있습니다. 이 여인은 20대 초반이던 때에 (아니면 십대 후반이던가, 중간에 나이가 나오지만 기억할 수가 없다) 여성을 납치해서 고문하다 살인하는 무시무시한 납치범에게 납치당하고 맙니다. 금발의 잘생긴 외모의 이 젊은 납치범은 율리아만은 이상하게도 죽이지 않고 데리고 다니면서 살인 행각을 계속합니다. 이 엽기적인 살인 여행은 독일-프랑스-벨기에-스페인 등 동유럽 국가들을 헤집고 다니던 납치범과 인질은 결국 납치범이 인질을 놓아주면서 끝이 납니다.
이 소설은 두개의 파트로 이루어져 있는데 첫번째 파트는 일종의 항변서입니다. 내용으로 유추하건데 율리아가 살인 여행에 끌려다닌 것이 아니라 범인과 공조해서, 혹은 범인과 사랑에 빠져서 어느정도 자발적으로 다녔다라고 주장하는 언론에 맞서기 위해 본인이 항변하는 글이지요. 이 파트에서는 얼마나 자신이 꼼짝달짝 할 수 없었는지, 다비드를 유명한 연쇄 살인마 마크 뒤트루1와 악어에 비유해서 말합니다. 그리고 본인이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를 항변합니다. 그 긴 기간동안 도망갈 틈이 한번도 없을 수 있느냐는 질문에 직접 당해보면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리기 위한 글이고, 일견 그럴싸 해 보이기도 합니다.
"다 자란 악어는 천적이 없다."
그러나 충격적인 2부가 펼쳐집니다. 2부의 제목은 러브레터입니다. 황당하게도 2부는 율리아가 납치범 다비드에게 보내는 편지들입니다. 물론 진짜로 보내진 않고 편지 형태의 일기라 생각하면 될 것 같습니다. 이 역시 납치에서 풀려나서 집으로 돌아온 후 쓰게 된 것 같은데 이 편지를 통해 율리아는 납치 되었을 때 진짜 있었던 일이 무었인지를 간접적으로 보여 줍니다. 이 여인은 다비드에게 사랑에 빠졌을 뿐 아니라, 다비드가 하는 살인 행위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고 본인이 적극 가담하기까지 하게 되는 것입니다. 흡사, 종교에 빠진 사람처럼 말이죠. 그리고 이 편지를 쓰고 있는 이 시점에는 그것을 잊지 못해 자해를 행하기도 합니다. (뭔가 미친거 같지요) 다비드와 함께 했던 그 살인 여행을 그리워하는 것이 이 여인의 진실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 책의 제목이 '기억하고싶은 악몽이었던 것입니다.' 검은 여름이라는 제목 역시 율리아와 다비드가 묶었던 여관 "검은머리 여관"의 간판이 망가져 "검은 여름"이라고 되었던, 어찌보면 둘만의 추억을 의미하는 공간이었던 것입니다. 2 이 편지에서 율리아가 몇몇 살인 사건에는 적극적으로 가담하고 나중에는 광신의 뉘앙스까지 보여주고 이런 율리아를 다비드는 집으로 돌려 보냅니다. 그리고 경찰들의 총격으로 사망해 버리지요.
이것이 이 책의 결말입니다. 살인마와 함께하는 여행. 일탈을 넘어선 광신의 행동들을 우리는 그 기록을 훔쳐보는 관찰자로서만 이 사건을 접할 수 있습니다. 작가 역시 우리 말고 이 기록을 보는 또 한 사람을 반전으로 숨겨 놓았으니 이 부분에서는 살짝 쇼킹 합니다.
전체적으로 흥미로운 주제이기는 하지만 다비드의 살인 동기, 해결 등이 없고(하기는 미친놈이 이유가 있어 미친놈이겠냐마는..) 율리아의 행위를 이해하는 것 또한 석연찮은 부분이 있습니다. 내면에 숨겨져 있던 분노본능을 일깨웠다고 보여지기는 하지만 수녀를 죽일때와 펑크족 같은 히피들을 죽일 때의 다른분위기는 작가가 혹시 극우단체의 일원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까지 합니다. 작가는 히피, 생각머리 없는 요즘 젊은 여자 들에게 놀라울만큼 큰 분노를 쏟아냅니다. 물론 율리아를 통해서이기는 하지만 심지어 죽일 가치조자 없을 정도이니까요.
영화 속에서 율리아가 저주해 마지 않는 대중가수 샤키라.
테아 도른이 왠지 성적인 상품이 되어버린 여성들을 증오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단순히 연쇄살인마와 사랑에 빠진 공모자를 넘어서 광신의 섬뜩함, 세상을 보는 냉소, 점점 변해가는 율리아의 광기가 진하게 묻어나오는 어두침침한 소설입니다.특히 압권은 율리아가 그렇게 그리워하던 개 탄카에게 수면제를 아무렇지 않게 먹일 때였지요.
이제 난 안다.
인간은 물 위를 걸을 수 있다는 것을.
영하로 떨어질 때까지 그는 그저 기다릴 수밖에 없다.
'열수레의 책읽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챠코와의 인터뷰> 상반신만 있는 여자, 하반신만 있는 여자. (0) | 2012.03.11 |
---|---|
<포옹>가면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 (0) | 2012.03.11 |
<블로그 만들기> 블로그.. 어렵지 않~아요!! 초보 블로거 필독 도서- (0) | 2012.03.01 |
<9가지 성격> 수천년을 내려온 에니어그램이라고? 혈액형과 다를바 없어. (0) | 2012.02.28 |
<굿바이, 스바루> 뉴멕시코의 자급자족 농촌생활 도전기 (0) | 2012.02.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