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교적 초창기(우리나라 발간년도는 93년이다) 하루키 단편 중 27편이 들어있는 작품집이다.
순서도 대중없고, 특별한 특징이 없지만, 27편 모두 상당한 의미가 있다는 것이 특징이라면 특징. 작품보다는 엮음의 미가 조금 떨어진다.
이 단편들을 읽으면서 느낀점은 하루키의 단편이 상당히 감각적임을 느꼈다. 일종의 어른들을 위한 환상동화라고나 할까..
특유의 비유와 상징체계는 스토리에 익숙해져 있는 읽기방식으로는 상당히 형이상학적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문장과 문장의 맥락을 보지 않고, 읽기에 집중하면 비로소 글이 보인다. 이상하게도 여기 실린 단편들은 글보다는 그림의 느낌이다. 읽음으로서 그림을 감상하는 느낌. 시 같은 느낌들..
거기에 음악적인 요소들을 중간중간 삽입하면서 글로서 보이고 들림을 재현한다.
또, 일종의 판타지적인 소재들을 많이 쓰기도 하고 스파게티, 재즈, 맥주, 와인 등의 재료들로 인해 세련됐다는 느낌을 많이 받는다.
르네 마그리트의 <향수>
하루키의 작품들을 보면 이런 류의 그림을 보는일과 비슷한 것같다.
논리적으로는 타당하지만 현실적으로는 말이 안되는 마그리트의 그림처럼.
- 본문내용
1. 하이네캔 맥주의 빈 깡통을 밟는 코끼리에 대한 단문
마을에 동물원이 망하면서 버려진 코끼리는 소일거리로 캉통을 밟아서 얇게 만든다. 압축기를 일부러 쓰지 않는 것은 코끼리의 존재가치를 만들어내기 위함이다. 우리 주위에도 존재하기 위해 일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지..
2. 헛간을 태우다
옛 여자의 남자친구와 친해진 주인공. 그 남자가 헛간을 불태우는 취미를 가지고 있음을 알게 되고 이를 뒤쫒는다. 헛간이 불타지 않음을 확인하고 진위를 물어보지만 상대남자는 이미 헛간을 태웠다 한다. 그리고 옛 여자는 사라져 버렸다. 헛간이라는 것은 주인공의 과거를 의미한다. 망각이 실재를 먹어버릴 때 비로소 추억이 존재한다. 그래서 주인공은 여자가 아닌 헛간을 생각하는 것이다. 추억을 그리듯이.. 이 작품에서는 평행우주에 대한 기본적인 구상이 드러난다. 1Q84의 첫걸음이 어쩌면 이 작품이었는지도 모른다.
3. 장님 버드나무와 잠자는 여인
집에서 쉬게 된 주인공은 귀가 잘 들리지 않는 사촌동생을 데리고 병원으로 간다. 그 과정에서 이상한 경험을 하게 된다.
4. 춤추는 난쟁이
약간은 괴기스러운 소설. 환상적인 면을 가지고 있는 일종의 동화다. 혁명이 일어나기 전, 제국에 나타난 난쟁이는 엄청난 춤솜씨로 황제의 맘에 들게 되고 1년 후에 혁명이 일어나자 모습을 감췄다. 그리고 주인공의 몸을 빌려 춤을 춘다. 그 춤으로 주인공은 아름다운 여인과 사랑할 수 있게 되지만 난쟁이를 추적하고 있는 혁명군에 의해 지금도 쫒기는 신세... 선택의 결과는 항상 본인이 져야 하는 거겠지..설령 그것이 어쩔수 없는 선택이었다 할 지라도.
5, 세 개의 독일 환상
단편이라 하기에도 민망할 정도로 짧은 세개의 글이다. <겨울의 박물관>에서는 성적인 유희를, 헤르만 게링 요새 1083과 헬 W의 공중정원에서는 독일의 쓸쓸함을 느낄 수 있다. 이해하기는 어렵지만 독특한 느낌을 받을 수 있는 글이다.
6. 비오는 날의 여인 #241·#242
비오는 날 집에서 가만히 있을 때 느낄수 있는 적막함. 죽음에 대한 단상이다.
7. 택시를 탄 흡혈귀
가장 콩트 스러운 글이다. 우연히 택시를 만났을 때 택시 기사가 흡혈귀임을 알게 되고 믿지 않는 척을 하지만 내려서는 여자친구에게 전화를 한다. 네리마 번호판을 단 택시는 타지 말라고..
8. 그녀의 마을과 그녀의 면양
지방에 출장을 가게 되면 숙소에서 TV를 보게 된다. 지역의 일들이 서울보다 많이 방송이 되는데, 그렇게 잘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한 상상과 관찰이 얼마나 흥미 진진한지를 알게 해주는 작품이다. 관찰하는 것은 익숙한 것에서 새로운 발견을 가져다 준다.
9. 강치 축제
하루키의 소설에서는 강치1를 의인화 한 부분이 종종 나타난다. 대부분의 경우 삶에 찌들려 사는 전형적인 일본의 샐러리맨을 의미한다. 이들은 영업사원으로서 남들을 귀찮게 하기도 하고, 그저 하루하루 먹고 마시는데에만 만족하며, 의미없는 일에 의미를 부여하고, 명함을 주고받는 것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삼는다. 이 소설에서 강치축제의 후원을 위해 주인공으로부터 찬조금(?)을 받아가고 주인공은 당연히(?) 찬조금을 내고는 분노한다.
10. 1963/1982년의 이파네마 처녀
유명한 보사노바 음악인 'The girl from Ipanema'를 들으면서 느끼는 감성을 소설화했다.
11. 5월의 해안선
오랜만에 고향을 찾은 주인공은 해변을 거닐면서 어린시절을 떠올린다. 어린시절의 기억과 현실간의 중복과 환상에 대한 이야기이다.
12. 치즈 케이크같은 모양을 한 내 가난
옛날 가난하던 시절에 살던 기찻길 사이에 끼어있던 집. 그 집을 떠올린다.
13. 스파게티의 해에
스파게티를 삶는다. 혼자 스파게티를 삶는건 어쩌면 하나의 의식일지도 모른다. 그때 걸려온 전화로 스파게티를 삶는 일이 끊어진다. 그의 친구의 옛 애인이 그의 친구를 찾는 전화다. 꽤 중요해 보이는 전화지만 주인공은 끊고 스파게티에 집중한다. 하루키에게 스파게티는 고독과 같은 말이다.
14. 농병아리
농병아리의 모습
출처: http://blog.daum.net/beijing-eve/14984265
좋은 직장을 찾는 주인공은 면접을 보기 위해 복잡한 길을 헤매다 5분 정도 늦게 도착한다. 그러나 암호가 있어야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상황. 문을 지키는 남자에게 힌트를 얻는다. 그 암호는 가이츠부리(농병아리)로 사장의 이름이다.
15. 사우스베이 스트라트
캘리포니아의 사우스베이에서 일어나는 사립탐정(?)의 총격전.
16. 강치, 17. 월간 「강치 문예」
9번과 같은 강치들이 축제를 연다. 또 쓸데없는 일들을 하면서 어리석음을 뽐내기도 한다. 현대인의 어리석음을 우화화 했다.
17. 서재기담(書齋奇譚)
조금 쌩뚱맞은 소설. 공포소설의 느낌이다. 노(老)작가의 원고를 받으러 간 편집인이 노작가에게 공격당하고 먹혀(?)버리는 이야기. 서재에서 간신히 도망치지만 하녀인 벙어리 미소녀에게 되잡혀간다.
18. 매발톱꽃주(酒)의 밤
거북이와 갈매기 등이 나온다. 주인공은 잃어버린 주소록을 찾기 위해 통행시간인 6시 이후에 마을 밖으로 나선다. 그리고 맛있는 매발톱꽃주를 마신다.
19. 회전목마의 데드 히트
우리네 삶은 회전목마와 같다. 우리는 우리 인생을 규정하는 시스템을 가지고 있지만, 이 시스템 덕에 많은 규제도 받고 있다. 함부로 앞지르기를 하는 것도, 내리거나 갈아타는 것도 제약을 받는다. 이 이상한 목마에 탄채로 우리는 서로 데드히트(격심한 경쟁)을 하고 있는 것이다.
20. 지금은 죽은 왕녀를 위해
학교 최고의 퀸카와 함께 MT를 가게 된 주인공. 퀸카의 잠버릇으로 인해 가벼운 스킨십을 하게 되고 좋은 추억으로 간직한다. 14년이 지난 어느날 그녀의 남편을 우연히 만나게 되고 그녀가 그 잠버릇으로 인해 아이를 죽였다는 충격적인 이야기를 듣는다. 같은 잠버릇이 누구에게는 추억으로 누구에게는 죽음으로 다가온 이야기.
21. 구토 1979
하루키 자신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이곳에서 기묘한 경험을 한 사람을 만난다. 그는 꼭 친구의 여인하고만 잠자리를 하는 기이한 인간이다. 40일간 구토를 계속한 경험을 들려준다. "이유없이 시작된건. 이유없이 끝난다. 그 반대 역시 마찬가지고.."
22. 비 피하기
돈을 받고 몸을 파는 여인은 이상한 것일까?. 돈이 목적이 아닌 경우에는 어떻게 되는 것이지? 평범한 여인이 어느날 갑자기 다른 남성과 잠자리를 같이 한다. 그리고 돈을 받지만 돈은 오히려 목적이 아니다. 상대 남자의 주머니 사정을 꽤뚫수 있는 특이한 여인의 이야기 "성생활의 뎡제적측면이 경제생활의 성적 측면일수도 있다"
23. 야구장
평범한 대학생이 어느날 갑자기 야구장을 사이에 두고 다른 여자를 관찰하는 관음증에 빠진다. 마약처럼 빠졌다가 거짓말처럼 정상으로 되돌아 온다. 중독과 죄의식에 관한 이야기
24. 헌팅 나이프
어느 해변의 한적한 리조트에서 일어난 소소한 이야기. 그림을 그리듯 자세한 묘사가 뜨거운 태양과 시원한 바다를 느끼게 해준다. 리조트에서 만난 휠채어 탄 청년과 나누는 나이프에 관한 이야기.
25. 풀 사이드
풀 사이드는 수영장에서의 반환점을 의미한다. 35살이 지나버린 남자가 자신의 인생을 돌아 보면서 삶을 반추한다. 성공한 삶을 달려오며 승승장구 했지만, 세월 앞에서는 모든것이 무의미하다. "아무리 군살을 빼더라도, 두번다시 젊어질 수 없다"
26. 쌍둥이와 가라앉은 대륙
쌍둥이 역시 하루키가 종종 다루는 소재다. 쌍둥이가 갇히는 꿈을 꾼다. 좀 몽환적인 소설이다.
27. 태엽 감는 새와 화요일의 여자들
스파게티를 삶는 주인공에게 다가온 세명의 여자들. 난데없이 전화해서는 폰섹스를 요청하는 여자. 잃어버린 고양이를 찾기 위해 들어간 <골목>에서 만난 휠체어 소녀, 그리고 그에게 고양이를 잃어버린 책임을 돌리는 와이프까지.. 모두 기묘한 화요일에 일어난 사건들이다.
화요일의 여자들
- 물개같이 생긴 바다생물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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