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적 우리 가족은 홍천강으로 휴가를 몇 번 갔었다. 한참이나 어릴 때였음에도 지금 기억에 있는 걸 보면 꽤나 강렬한 기억이었던 것 같다.
또 연신내 쪽에 있던 미성회관이라는 경양식집도 기억이 난다. 오뚜기스프에 나름 정갈하게 돈까스와 함박스텍이 나오던 가게였다. 정문에는 조타수 모형이 있어서 잽싸게 돈까스를 먹고는 거기에 매달려서 놀았던 기억도 있다. 얼마전에는 어린시절 살았던 인천의 가좌동이 생각이 나서 다음뷰로 찾아본 적도 있었다. 이렇듯, 한번쯤은 어렴풋한 어린시절의 기억을 되새기는 여행을 꿈꿔본적이 있을 것이다. 이 위대하기 그지없는 여행작가는 그 어린시절의 기억을 찾아 미국 전역 여행을 떠난다. 좁은 한국땅에서도 어려운 일을 브라이슨은 거대한 미국땅에서 시작한다. 자동차 한대에 몸을 싣고는...1
이 글은 여행기라는 이름을 달고 있음에도 관광지 소개, 맛집 따위는 눈을 씻고도 찾을 수가 없다. 러쉬모어 산이나 그랜드캐년이 단 2~3페이지로 정리되는 정도이니 말 다했다. 그 비워진 자리를 고속도로와 모텔, 그저그런 식사 따위가 채우고 있다. 제목 그대로 발칙하기 그지 없다. 그럼에도 이 미국횡단기가 무지무지 흥미로운 것은 특유의 위트있는 글재주와 행간에 숨어있는 문화적 해석때문이다. 90년대 초반에 쓰여진 글을 20년이 지난 2010년에 번역되어 여행서적으로서의 가치는 달나라로 떠난지 오래임에도 이 책의 독서가 의미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 책은 여행소개가 아닌 여행 그 자체로서의 아름다움과 동시에 미국의 문화를 소개하는데 그 존재가치를 가지는 것이다.(오.. 무언가 대단해 보인다.)
예를 들면 우리가 알고 있는 막연한 미국사회에 대한 동경을 이 책은 무참히 깨트린다. 무식하기 그지없는 미국의 대학생들과 미적인 가치와 역사성이라고는 모조리 무시하고 월마트와 주유소, 드라이브인 식당으로만 채워지고 있는 소도시에 대한 안타까움이 바로 그것이다. 이 책에서 브라이슨은 완벽한 소도시(타운)을 찾으려 한다. 모든 것이 모여있다는 뜻에서 '모아빌'이라는 가상의 이름을 붙여놓고는 각 마을에서 아름다움만을 추려내 진짜 모아빌을 만들려 한다. 하얏트 대신 허름한 모텔과 교회, 나들이가는 사내 둘 등 우리가 영화에서 접하고 부러워했던 이미지를 정작 미국인인 브라이슨 마저도 그리워하는 것이다. 그러니 그것은 모조리 허상이라는 얘기?!
캠핑카를 타고 돌아다니는 여행객들에 대해 분노를 날리면서 돌아다니지만, 결국 모아빌을 찾는데에는 실패한다. 거의 근접한 소도시들 몇개를 찾아내는데에는 성공했지만...
출발지이자 고향인 디모인으로 돌아오면서 끝맺는 이 책은 역시나 익숙하고 한적한 고향이 최고야~~ 라는 교훈(?)을 남긴다. 파랑새야?
"하이 맘, 아임, 홈"
빌브라이슨은 읽었을 때 절대로 후회를 주게 하지는 않는다. 다만 이번 미국 여행기는 너무나 거시적이고 압축된 나머지, 유럽여행기나, 애팔래치아 트래킹처럼의 재미를 주지는 못한다. 이전의 작품에 비해서는 조금 약한 듯 한 것이 솔직한 나의 생각이지만 그래도 브라이슨은 최고다.
빌 브라이슨 발칙한 미국 횡단기
PS. 미국 여행을 간답시고 이 책을 짐가방에 챙겨 넣지는 말자.
- 자동차는 슈베트이다 [본문으로]
'열수레의 책읽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어린왕자> 어른을 위한 동화. 다시 읽어보면 새록새록해.. (0) | 2012.06.06 |
---|---|
<화요일의 여자들> 그림을 보는 듯한 짧은 글들의 향연. 읽지 말고 감상하라. (0) | 2012.06.06 |
<노동의 미래> 과연 다음 정부는 어떤 방향을 잡아야 하는가. (0) | 2012.05.23 |
<추운나라에서 돌아온 스파이> 냉전 한복판에서 벌아지는 영국과 독일의 첩보 두뇌싸움. (0) | 2012.05.20 |
<웃음> 웃음만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는 농담. 궁극의 유머를 찾아라. (0) | 2012.05.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