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에도 교수의 신분에 뛰어난 언변과 스타성이 더해져 매스컴의 집중을 받는 석학들은 꽤 있어왔다.
도올 김용옥이 그랬고, 구성애, 황수관 박사 등이 그랬다. 한마디로 끼있는 배운사람들이랄까?
이런 이들 중에 최근 가장 두각을 드러내는 사람이 바로 명지대학교의 김정운 교수다.(본인은 여러가지문제 연구소장이라는 직함을 항상 같이 쓴다.)
최근 몇 년동안 매스컴의 가장 많은 주목을 받은 김정운 교수는 TV에서도 맹활약중이지만 저서 역시 발표할 때마다 초대박은 아니더라도 꾸준한 판매를 보인다. 왜 이렇게 인기가 높은걸까?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물론 진중권 교수가 1등이겠지만 정식으로 TV에 출연하는 정도로 본다면)
김정운 교수는 늘 남자를 이야기 한다. 그것도 젊은 시절을 희생하고는 무기력증에 빠진 쓸쓸한 대한민국의 중년 남성을 주제로 글을 쓴다. 독일에서 오랫동안 심리학을 공부한 그의 분석은 왠지 그럴싸 하고 공감이 된다. 공감뿐 아니라 위로해주기도 하니, 인기가 없을 수가 있을까.
그뿐 아니라 자녀들과 아내 같이 그 주위에도 이해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해 준다. 그의 글을 읽으면 왠지 남편, 아빠가 이해가 되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된다. 글의 진위를 떠나 그것만으로도 상당히 가치있다.
특히 이번 <남자의 물건>은 베스트셀러 10 안에서 상당히 오래 머물러 있다. 좋은 글이 많이 읽히는 것은 좋지만 그만큼 그의 글이 필요한 이들이 많아졌다는 뜻인지라 왠지 씁슬하다.
두개의 챕터로 구성된 이 책을 살펴보면, 1부에는 남자에게 보내는 글들로, 2부에는 명사 10명의 인터뷰가 담겨져 있다. 사실 1부에 실린 글들에서는 기존 그의 책에 실렸던 문장들이 많이 보인다. 몇 몇 표현들은 거의 동일하다. 아마 기존에 냈던 책들 중 중요하다 생각되는 이야기들을 조금 다듬고 몇몇 새로운 이야기들을 더한 것 같다. 한마디로 얘기하면 재탕이라는 이야기인데, 그리 얄밉지는 않다. 단순히 옛 책을 다시 팔기 위해 이야기를 덧붙였다기 보다는 2부의 본 이야기를 하기 전에 다시 한번 알아야 할 부분들을 짚어준다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솔직히 재탕이라 해도 쏠쏠찮게 재미있는 문장들이다.
이 책의 핵심은 2부다. 이어령, 신영복, 차범근, 안성기, 조영남 등 이시대 명사 10명을 만나서 직접 인터뷰를 했다. 단순히 인물을 탐구한 것이 아니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물건들 중 가장 아끼거나 집착하는 물건 하나를 꼽고 거기에서 해당 인물의 심리적인 요인을 분석해 내고 다시 한국사회를 이야기해낸다. 그의 표현을 빌자면 18년 동안이나 독일 가서 공부했기 때문에 가능한 그만의 영역이다. 예를들면 그림을 그리는 안성기로부터 집착과 이기적인 면, 교만을 발견해 낸다. 우리가 알고 있던 안성기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다.
다른 인터뷰에서는 볼 수 없었던 유명인들의 새로운 모습을 볼 수 있고 거기에 따른 이야기들과 공감을 끌어낸다. 그것만으로도 이 <남자의 물건>은 확실히 물건이다. (그래도 사람의 선입견은 무서워서 조영남과 김문수에 대한 이야기는 조금 공감하기 힘들었다)
<남자의 물건>이 중요한 시대다. 정확히는 남자의 물건에 얽힌 그만의 이야기가 중요하다. 자신만의 물건에서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것. 그것이 대한민국에서 남자로 살아가면서 행복해 질 수 있는 방법이다.
This is My Story.
파이널 판타지 역사상 가장 서사적이었다는 평을 받은 Final Fantasy X의 시작에 나오는 대사다.
남자의 이야기를 만드는 것. 그것이 마지막 판타지의 실현이 아닐까?
PS. 가만 있어보자. 나에게는 어떤 물건이 있나?
남자의 물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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