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세편은 독자적인 이야기 구조를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다가올 말세를 대비한 세계관의 재조정이 핵심이라는 점에서 세계편을 대비한 국내편과 흡사하다. 물론 데뷔작인 국내편보다는 훨씬더 복잡하기는 하다. 그렇지만 국내편에서 세[계관을 만들어내고 세계편에서 세계관이 절정에 이르렀듯이 새로운 절정을 위해 세계관을 조정하는 것. 그것이 혼세편을 대한 나의 느낌이다.
작가는 혼세편의 주제가 세상에 대한 믿음. 자신에 대한 믿음이라 밝힌 바 있다.1 물론 전반적인 내용에서 세상사람들이 퇴마사들을 곡해하고 그들을 위험하다 생각하고 거부하지만 그것만으로 믿음이라는 주제가 드러났다고는 볼 수 없다. 이야기를 풀어 나가면서 작가가 의도하지 않았던 새로운 주제가 드러나게 되는데 바로 죄와 벌. 그리고 속죄이다. 2
인간은 어차피 완전하지 못하니 서로 기대고 위로하며 살아가야 하는 것이겠지요. 그러면 바로 진정한 용서는 어디에 있는 겁니까? 어쩌면 우리는 서로를 위로하고 감싸주면서 우리의 죄를 그렇게 지워버리려고 하는지도 모릅니다. 아니 바로 그겁니다. 우리는 각자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죄책감은 용서하지 못한 채 똑같은 처지의 다른 사람을 위로하면서 자신의 죄를 조금이나마 잊어보려 하는 것입니다.
작가가 나타내려 했던 것은 힘에 대한 세상의 눈과 그를 받아 들여야 하는 퇴마사들을 통한 선과 악. 그리고 죄와 징벌이다. 물론 작가가 계획했던 믿음이란 요소의 한 자락이기는 하나 정확하게는 죄와 벌이 바로 혼세편의 주제인 것이다. 그러나 그런 무거운 주제와 말세편에 대한 강박이 조금은 지루해진 혼세편을 탄생시켰다. 그 때문에 전체적인 이야기 구조는 예전만큼 간결하고 재기발랄하지만은 않다.
와불이 일어나면에서 초치검의 비밀과 같은 민족주의적 사상을 다시한번 시도 했지만 중언부언 늘어놓는 느낌이 강했고 그 외의 편들은 대부분 새로운 적을 만들어 내는 작업이었다. 세계편에서보다 더 강력한 적. 바로 마스터와 블랙엔젤을 탄생시키는 것이었다. 그 외에도 대부분의 에피소드가 그 자체로 대단한 이야기를 가진다 보다는 세계관의 각색이 주 목적인것처럼 보인다. 새로운 적과 동료들의 탄생. 해동감결의 등장 등등. 너무 많은 것을 담으려 하다보니 이야기의 서사가 흔들려 버렸고 결국 찝찝한 중장편들만이 남아버렸다.
혼세편에서 메인 이야기는 바로 홍수인데 안타깝게도 여기서 이우혁은 장편에서 자신의 한계를 보여준다. 사실 이우혁은 전형적인 이야기꾼이다. 어휘와 문장력에 기대지 않는 오로지 재미있는 이야기로 승부하는 이른바 문학계의 아웃사이더인것이다. 그런 점 때문에 오히려 긴 호흡이 필요한 홍수 같은 장편에서는 정리가 안되는 모습들을 많이 보여준다. 본인도 느껴서인지 중간중간 주인공들의 입을 통해 정리하는 멘트들이 많이 나오는 데 그런 것들이 더 작품의 몰입도를 낮게 만든다. 아이러니 하게도 혼세편 마지막에 실린 몇편의 단편들이 굉장히 뛰어나 그런점들이 더 잘보인다.3
그리고 혼세편에서의 새로운 재미는 바로 로맨스의 등장이다. 수많은 남녀 주인공들이 나오면서 러블리 모드가 등장하지 않는게 더 말이 안되었다. 혼세편에서 드디어 승희와 현암의 러브모드가 나오지만 거의 중딩 수준의 러브모드다. 사실 이후의 작품들에서도 이우혁은 남녀관계에 대한 묘사가 상당히 유치한것을 볼 수 있다.
세계편에 이어 많은 이야기를 담았지만 혼세편 만으로는 무디어진 느낌이 많이 든다. 말세편에 대한 안배이기는 하나, 퇴마록 중에서는 가장 지루한 편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그렇지만 말세편에서 작가의 포텐이 폭발하니 기대해도 좋다. 결론적으로 조금은 지루한 준비기간만 버티면 이우혁은 버틴것에 두배의 재미를 준달까.
퇴마록 혼세편.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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