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대망의 마지막편이다.
이번 말세편은 기존의 퇴마록 시리즈와 차이가 있는데, 바로 이 6권 하나가 하나의 장편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점이다. 물론 이전 초치검의 비밀이나 홍수에서 장편의 가능성을 보이기는 했지만 서사에서 약점을 보여주었었다. 그러나 말세편에 이르러서는 고대부터 내려오는 예언을 중심으로 온갖 집단이 다양하게 등장하는 복잡한 구성은 장편을 처음 쓰는 신인작가1가 쉬이 다룰수 있는 영역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우혁은 캐릭터의 흔들림 없이 원하는 방향으로 글을 끌고 나가는 뚝심을 보여 주었다. 아마도 PC통신 연재물이었다면 불가능했으리라.
말세편은 치우천왕과 맥달이 해동감결에 중요한 예언을 남기는데서 시작한다. 인류의 멸망을 예언하는 이 책자가 퇴마사 팀에 입수되면서 세상은 말세로 치닫는다. 여기에 적그리스도의 출현을 예언하는 묵시록. 모세가 남긴 언약의 궤까지 모든 말세 관련 예언들이 한날 한시를 가리킨다. 퇴마사들을 비롯한 전 세계의 모든 비밀집단들이 이 예언을 놓고 대립한다. 그 이름들만 봐도 하나하나가 하나의 소설이 될정도의 단체들이다. 성당기사단, 마녀협회, 검은편지결사, 어쌔신, 검은 지하드, 깔끼파, 장미십자회, 프리메이슨, 교황청 이단심판소 등등. 여기에 중국의 용화교나 미국의 차이나갱, 한국의 밀교 조직들까지 합세하니 이정도라면 거의 모든 신비조직들이 총출동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들은 각기 조직의 목적에 따라 적그리스도(징벌자)의 탄생을 막아 말세를 막으려 하거나 거꾸로 징벌자를 지켜 말세를 도래케 하려 한다. 그러나 꼭 선악이 나늬는 것도 아닌것이 인간이 멸망하면 본인들에까지 영향이 미칠까 말세를 막으려는 악마들2도 있고 징벌자를 탄생하게 하여 신의 뜻에 순종하려는 이들도 있다. 어느쪽이 더 선이고 악인지 알수도 없는 상황이다.
우리의 퇴마사들은 징벌자의 탄생을 지키려는 쪽. 순리대로 일을 풀어내야 한다는 신념에 따라 징벌자라는 굴레를 쓰기는 했지만 아직 아무런 죄를 짓지 않은 아기를 지킨다는 당연한 정의를 내세워 이들은 징벌자를 지키려 한다. 이를 위해 신주단지처럼 믿던 해동감결도 버리고, 가깝던 이들과도 대립하게 된다.
지구의 평화를 지킨다라는 명제 아래 선악의 구분과 운명의 개척 같은 내용을 담으면서 너무나 이우혁다운 장치를 몇가지 가미한다. 바로 라미드 우프니스와 아하스 페르쯔이다.
라미드 우프니스는 고대의 주술로 신이 인간을 멸하지 않도록 하는 일종의 약속이다. 과거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할 때 의인이 10명만 있더라도 멸하지 않겠다는 신과의 약속에서 착안 되어 펼쳐진 주술로 전세계에 절대선인 36명이 있는데 이들이 라미드 우프니스이다. 이들은 1명이 죽으면 1명이 자동으로 태어나며 인간이 아닌자들만이 그들을 죽일 수 있다. 또한 본인이 라미드 우프니스임을 알게 되는 순간 마찬가지로 죽음을 당하는데 이들로 인해 신의 분노를 피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강제적으로 신의 분노를 피한다는 점에서 그 자체가 문제가 있는 주술이었고 말세의 방아쇠 역할을 하기도 한다.
아하스 페르쯔는 과거 그리스도가 골고다를 오를때 조롱했던 자로 예수가 "내가 다시 올 때까지 기다리라"는 주술을 걸는 바람에 불멸의 삶을 사는 인간이다. 그는 영원히 사는데 지친 나머지 억지로 말세를 도래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린다. 죽기 위해서가 아니라 한판 뜨기 위해..이정도 설정이면 이우혁의 스케일이 보통이 아니란게 느껴진다. 성경의 재해석을 넘어 예수와의 대립이라니...
"내가 바로 말세에 임할자다."
그 외에 혼세편을 거치면서 성장해 버린 퇴마사들을 보는 재미도 상당하다. 약간은 개그스러워진 현암군이라던지.. 사춘기를 겪는 것 같은 준후라던지.. 아.. 또 현암과 승희의 러브모드도 꽤 재미있다. 물론 이우혁은 남녀관계 설정에 대단히 약하기 때문에 너무 큰 기대는 금물이다. 퇴마사들이야 당연히 말세를 막지만 그 과정이 상당히 재미있다. 퇴마사간의 갈등. 타 조직과의 갈등.. 수많은 등장인물들과 희생. 대립. 속고 속이는 관계속에서 복잡한 예언들까지 난립하니 그야말로 복마전이다. 이렇게 복잡한 과정속에서 논리적인 결말을 감정적으로 찾아들어가는 퇴마사들의 행보가 지금까지 중 가장 강렬한 퇴마록 시리즈를 만들었다.
PS.
사실 10년도 넘은.. 그것도 19권에 달하는 장르소설을 다시 읽을 필요가 있나 생각했었다. 그러나 참 잘읽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 단순하게 글을 읽은게 아니라 추억을 다시 읽었다. 중고등학교 때 날밤을 세워가며 읽던 소설을 한번에 다시 쭈욱 읽는 것이 글의 좋고 나쁨을 떠나 기분좋은 독서였다. 지금에 와서 봤을 때 투박하기 그지 없는 작품이기는 하지만 나름대로의 상징성을 넘어 상당히 의미있는 작품임에는 확실하다. 그리고... 작가의 바램처럼 유치하지만 무진장 재밌는 건 사실이다.
퇴마록 1(말세편)
'열수레의 책읽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뒤틀리고 비트는 찝찝한 웃음. 히가시노의 블랙조크를 즐길 '흑소소설' (0) | 2012.09.06 |
---|---|
'캘리그라피'에 대해 알려면 이 책 보지 마라. 도움 안된다. (0) | 2012.09.05 |
말세를 대비하다 지루해져 버렸어. '퇴마록 혼세편' (0) | 2012.08.31 |
블랙서클의 등장. 이제는 세계로 간다. '퇴마록 세계편' (0) | 2012.08.25 |
한국 장르소설의 새로운 시도.'퇴마록 국내편' (0) | 2012.08.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