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턴가 영미, 유럽의 추리 스릴러들의 분위기가 서로 비슷해진것을 느낀다. 제프리 디버의 도로변 십자가를 읽으면서 헤닝 만켈이 느껴지는 것 처럼.
특히 음울한 분위기라던지 안개낀 듯한 사건 발생 주변들 같은 주변적 요소들은 말할 것 없고 막판 반전보다는 차근차근한 과정에 강한 집중력을 보이는 점 등이 그렇게 느껴진다. 물론 그런 것이 재미와는 또다른 문제이기는 하지만 아쉬움이 남는건 어쩔 수 없다.
도로변 십자가는 냉철하고 논리적인 추리 보다는 주인공 캐트린 댄스의 심리 추리에 기반한다. 캐트린 댄스를 모르는 사람이 많을 것 같은데 제프리 디버의 시리즈에 등장하는 여자 주인공으로 동작분석이라는 분야의 전문가이다. 상대방의 동작을 중심으로 진실과 거짓을 감별하는 탁월한 능력을 가진. 이른바 인간 거짓말 탐지기인 것이다. (예전 본 콜렉터라는 영화에서 안젤리나 졸리가 그녀의 역할을 한적이 있다.)
도로변 십자가는 일종의 메세지이다. 어느날 도로변에 장미로 장식이 되고 날짜가 적힌 십자가가 세워지고 다음날 한 소녀가 납치당했다가 구사일생으로 살아난다. 그 이후 십자가가 연속적으로 세워지고 어떤이는 구사일생으로 살아나기도 하지만 목숨을 잃는 사람들도 나타난다. 모든 사건의 중심에는 칠튼 리포트라는 블로그가 있었다.(실제로도 존재하니 한번 들어갈 사람은 여기를 클릭) 이 동네의 학교에서 파티를 마치고 귀가하던 트래비스라는 학생이 몰던 차가 사고를 내고 동승했던 3명의 소녀중 1명많이 살아남은 사건이 있었다. 칠튼 리포트에서 이 사건을 다루면서 트래비스라는 학생에게 모든 비난이 쏟아진다. 이른바 악플이 달린 것인데 모든 사건은 이 글에 악플을 단 학생들이었던 것이다. 이 일로 트래비스가 용의선상에 오르지만 그는 홀연히 사라져 버린다.
도로변 십자가는 단순히 범인을 찾는 소설이 아니다. 그 안에는 삶이라는 요소가 강하게 녹아있다. 수퍼 영웅 경찰이 아니라 연속되는 사건에 피곤함을 느끼고 아이 육아에 소흘함을 자책하는 커리어 우먼이 주인공이다. 용의자 추적 - 의외의 범인의 등장 - 또한번의 반전 이라는 추리스릴러의 정형화된 틀을 따라가고 있음에도 지루하게 느껴지질 않고 몰입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이 살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 등장하는 인물들은 특수한 직업을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우리네 이웃들과 다르질 않기 때문에 실제로 일어난 일인 것처럼 즐길 수 있다는 것이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이다. 완전히 몰입할 수 있는거지...
사실 이 작품은 온라인 상에서 돌아다니는 개인정보의 문제점을 다루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악플에 대한 이야기이다. 거의 매일같이 여러 게시판에서 인신공격성의 글들을 볼 수 가 있다. 거기에 달리는 댓글들은 거의 마녀사냥 수준이고 설령 잘못되었다 하더라도 아무도 책임을 지지를 않는다. 사이버상의 책임에 대한 것이 이 작품의 핵심인 것이다. 그런걸 보면 미국이나 우리나 이 악플로 인한 문제는 똑 같나보다.
전체적으로 균형이 잘 잡혀있고 우중충한 분위기도 맘에 든다. 캐트린의 추리기법도 멋지고.. 아무튼 꽤 매력적인 작품과 주인공이다. 단점이 있다면 작가가 블로그 문화에 대해 깊은 고찰이나 이해 없이 단편적인 인식만을 하고 있는것이 보인다. 편협되었다고 할 수 있는 그 인식이 조금 눈에 거슬린다. 그리고 결말에 있어서도 현실세계의 문제들이 핵심이 되어 버린다.(자세한 내용은 책으로.. 더 말하면 스포일러가 되버린다.) 한마디로 작가가 의도했던 인터넷의 폐혜를 다루기에는 조금 미흡했지만 밤을 지샐만한 멋진 스릴러임에는 틀림이 없다.
도로변 십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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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1. 책의 목차가 요일로 되어있기는 하지만 별 의미는 없는 것 같다. 그에 맞추어 이야기가 진행되는 것 같지도 않고.
2. 내가 본것은 1판 1쇄인데, 352p에 중대한 오류가 있다. 중간쯤에 '그린리프 네가 날 죽인거야?'라는 대사가 있는데, 그린리프가 아니라 스트라이커가 되어야 문맥이 맞는다. 혹시라도 출판부가 이 글을 본다면 다음판에서 바로 잡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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