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일이 아닌 사건. 풍경이 뇌리에 강하게 남는 경우가 있다.
아무런 특별한 일이 없었음에도 강열하게 남아있는 장소가 있는데 나에게는 경희궁이 바로 그런 장소다. 일전 한창 연애 할 때 새로운 데이트 장소를 찾다 찾다 찾았던 경희궁..벌써 4년 전인데 아무것도 안하고 그냥 앉아 있다 왔음에도 상당히 인상 깊었던 장소다. 그 경희궁을 이제는 아기와 함게 다시 찾았다. 글을 쓰면서 당시 사진을 보니 풋.. 정말 풋풋하다..(2008년 경희궁 방문기 보러가기)
한가한 주말 낮.. 경희궁으로 향하는 한적한 버스를 탔다.
궂이 자동차를 움직이지 않은 건 운전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 탓도 있지만 아이가 있다고 해서 자가용만 이용하는게 왠지 좋지 않게 느껴진 탓도 있다. 아무튼 버스가 신기한지 요리조리 둘러본다.
경희궁은 경복궁이나 덕수궁보다는 조금 덜 알려져 있기는 하지만 한적한 나들이에 이만 한 곳도 없다. 서두에 밝혔듯이 4년전이나 지금이나 그 한적함의 매력은 여전했다. 뭐랄까. 도심에서 갑자기 적막함이 느껴지는 기분이랄까..
들어가는 입구쪽에 폐타이어(?)같은 재질로 만든 황소 모형이 있는데 나름 주변 분위기와 잘 어울린다. 참 이곳 경희궁에는 시립미술관이 붙어있으니 가끔 분위기를 타고싶을때는 딱이다.
아주 사람이 없는건 아니지만 그냥 스치듯 보이는 정도고 시끄럽거나 하지도 않는다. 한켠에서는 교보문고를 다녀왔는지 서점 쇼핑백을 옆에끼고 벤치에 앉아 독서 삼매경에 빠진 아가씨가 있는가 하면 아이들을 데리고 와서 슬슬 산책을 하는 사람들도 있고.. 단체 관광객 치고는 꽤 조용한 중국인 집단에 4년전 우리처럼 데이트중인 커플도 있다. 이 모든것이 분위기를 해친다보다는 오히려 운치있게 만들어주는 역할을 한다.
승정전을 비롯해 경희궁의 낮은 참 사진이 잘 나온다. 사진찍는 기술이 없어서 그 빛을 100분의 1도 활용하지 못하지만 그래도 천연 자연광이 너무나 멋지게 들어온다.
이번에 찍은 사진 중 가장 잘 나왔다고 생각되는 사진.. 내가 찍은게 아니라 와이프가 찍었다. 확실히 사진찍는 구도가 배운 여자 답다.
난 언제쯤 이렇게 찍히려나..
경희궁은 서울 안의 다른 궁에 비해 규모도 작고 볼게 그다지 많은 것도 아니다. 창경궁처럼 넓은 비원이 있는것도 아니고.. 그럼에도 볼거리가 하나 있다면 바로 저 잡상이다. 궁궐이 뒤쪽으로 갈 수록 가파르게 올라있어 저 잡상을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볼 수 있다. 별거 아니라 생각할지 몰라도 저걸 저렇게 가까이에서 보는게 생각만큼 쉬운일은 아니다.
드디어 이곳을 찾은 이유.. 다른 사람들이 들으면 웃을지도 모르겠다. 바로 이곳이다.
경희궁 뒤편의 작은 언덕... 볼게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잔디만 조금 있는 공간이다. 거기에 벽도 없이 난간으로 막혀져 있어 바깥을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우리를 볼 수 있는 불편한 장소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이곳이 4년전 가장 인상 깊었었고, 다시 찾고 싶었었다. 이제는 아기랑 이 장소를 찾게 되서 기쁘다. 여기가 왜 좋으냐고? 그런건 없다. 그냥 우연 찮게 느낌이 좋을 뿐이다.
4년전 와이프랑 둘이 앉아서 노닥거렸던 곳에 아기가 자리잡고 있으니 감회가 새롭다. 그런걸 아는지 이녀석은 잘만 앉아서 두리번 거리고 있다.
어떤때는 참 잘 웃어주는데 사진찍으려면 참 웃는 모습을 담는게 힘들다. 기분이 안좋다기 보다는 어리둥절 하다는 느낌이다. 하긴 우리가 볼때나 귀엽지 이녀석은 얼마나 귀찮겠는가. 그래도 밖에서 신선한 공기를 접하는게 기분이 나쁘지는 않은지 나름 만족하는 것 같다.
그래도 경희궁의 메인이라 할 수 있는 승정전에서의 기념 촬영은 남겨야지.. 궁 한가운데서 호령하는 멋진 왕의 모습을 꿈꾸며 구도를 잡았지만.. 늘 그렇듯이 얘상은 빗나가게 마련.. 쪼금 불쌍한 컨셉으로 나와버렸다.
이제 밥먹을때다. 밥달라고 엄마를 노려보는 모습에 다시 한번 빵 터지고.. 주섬주섬 밥을 준비한다. 쌀쌀한 날씨지만 따뜻하게 입혀놨으니 한끼쯤은 밖에서 먹어도 괜찮을게다..
이제 밥도 먹었으니 가을 하늘빛 맞으면서 운동과 함게 트름할 시간이다. 배가 불러서 기분이 좋은지 이제야 표정이 좀 다양해진다. 결국 궁 안에서 보다는 궁 밖에서야 사진이 잘 나와버렸다. 아쉽지만 어쩌겠는가. 또 기회가 닿겠지..
어찌 됐건 와이프와 즐거웠던 데이트 코스를 아기와 함께 방문한다는거.. 무언가 특별한 경험 같다. 앞으로도 아이와 같이 가게 될 많은 장소들이 이미 아내와 연애할 때 방문했을 장소일 텐데 그때마다 새로운 느낌을 받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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