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래픽 노블'과 '만화'의 차이를 알지 못한다. 이 책의 마케팅이 그래픽 노블이라는 데에 맞춰져 있는 건 아직 한국에서 만화라는 영역이 가지고 있는 세대적 한계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만화가 되었건 그래픽 노블이 되었건, 이 책이 충분히 '읽을'만할만한 가치가 있는 '작품'이라는 데에는 어떠한 이견도 없다. 감동적인 만화를 넘어서 삶에 대한 고찰까지 담겨있는 만화. 바로 <주름>이다.
파코 로카라는 스페인의 작가가 그려낸 두편의 만화.. <주름>과 <등대>가 담겨져 있으며 한편이 약 100페이지 정도 되는 양으로 읽을라 치면 2시간 정도면 충분하다. 내용적인 측면에서 먼저 살펴보면, <주름>은 치매에 걸린 노인들의 이야기이다. 인간의 수명이 늘어나는 것을 따라잡지 못하는 사회환경은 어디서나 문제인가 보다. 스페인에서도 마찬가지인건지, 치매에 걸린 노인들은 요양소에서 쓸모없는 취급을 당하면서 죽을날만을 기다린다. 몸이 아픈 것보다 자신의 쓸모가 없어졌다는 사실이 더 안타까운 것이 사람인데 이곳 요양원에서는 자신의 쓸모를 찾기보다 내가 어떤 사람인가만을 끊임없이 찾아야 하는 것이다. 이런 류의 스토리가 흔히 대부분 가족의 발견 같은 훈훈한 마무리로 이어지는데, 이 작품은 다르다. 알츠하이머가 진행중이라는 사실을 알게된 주인공 에밀리오는 요양원 동료들에게 베풀면서 자신의 마무리를 한다. 이 작품은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기 보다 주변의 흔한 이야기들을 한데 모았다는데 그 의미가 있다. 파코 로카는 주변에서 이 캐릭터들을 빌려왔다고 밝혔다. 파코 로카는 창조가 아니라 이야기를 발견 한 것이다. 이 이야기의 시사점은 그들에게도 젊음을 넘어 아이였던 시절이 있었다는 단순한 사실이다.1
함께 수록되어있는 <등대>는 조금 더 만화같은 작품이다. 스페인 내전에서 탈출한 병사 한명이 버려진 등대에서 지내게 되고 등대지기와 함께 '라퓨타'라는 섬에 가기 위한 준비를 한다. 그러나 라퓨타는 걸리버 여행기에 나왔던 섬이고 2 이를 알게 된 병사는 분노하지만 이를 쫒아온 적들로부터 쫒긴다. 등대지기는 그를 위해 등대를 태워 길을 안내하고 등대와 함께 목숨을 버린다. 이 만화가 주는 즐거움은 이런 스토리가 아니다. 스토리에 녹아있는 등대지기의 언어유희. 보물섬과 걸리버 여행기, 모비딕을 넘나드는 환상적인 이야기들. 자신의 꿈을 버리지 않고 남을 위해 꿈을 불사르는 감동이다.
만화적인 아름다움의 감동 외에 스페인이라는 낮선 곳의 문화가 담겨 있는 그림체는 익숙하지 않은 것에서 오는 들뜬 감정을 경험하게 해준다. 두편의 만화에 비해 책 값이 좀 비싼 듯 하지만, 거꾸로 생각해 보면 우린 15,000원으로 유럽의 감성을 거실에 놓을 수 있는 것이다.
이분이 작가인 파코 로카이다.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젊고 개구장이 같다.
주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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