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이런날이 있다. 무언가 홀린 것처럼, 평소에는 굉장히 고민을 많이 하고 했을범직한 일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저지르는 날.. 비가 올줄 뻔히 알면서 아무렇지도 않게 짐을 싸고 출발하는 행위..
어제가 이런 날이었다. 그 전날 급작스레 다녀온 포천 나들이에 대한 아쉬움. 언젠간 가봐야지 했던 고창의 청보리밭. 마침 가득 차 있던 차의 기름과, 거리에 대한 개념이 부족했던 와이프의 공간개념까지.. 비가 올 것이라는 일기예보를 가뿐히 무시하고 떠나게 만드는 원인들이었다.
무려 5시간 반을 걸려 도착한 고창은 비가 오지는 않았지만, 흐린 날씨였고, 무엇보다도 엄청난 강풍을 동반하고 있었다. 축제 기간이기는 했지만, 즐기러 온사람은 많지 않았고, 신청한 노래는 한번도 제대로 찾지 못하는 현지 이벤트라디오 진행자의 멘트만이 메아리 치고 있었다.
내려오는동안 쌓인 피로와, 여기만 둘러보고 다시 5시간이 걸려 올라갈 서울에 대한 걱정과, 생각보다 좋지않은 날씨.. 흥겨움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분위기가 복합적으로 우울함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다가....
사람은 누구나 탁 트인 곳에서 위안을 받나 보다. 노란 유채꽃이 펼쳐져있는 풍광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더니, 요상꾸리한 향기가 함께 머릿속을 헤집으며 정신을 들게 했다. 주위를 살펴보니, 나쁜 날씨에도 생각보다 많은 관광객이 함께 하고 있었고 5시간을 운전해서 온 것 외에는 모든 것이 해피했다. 일기예보와 달리 비도 안왔고, 꿍꿍이는 칭얼대지도 않고 있다.!!
여기 고창에서도 한창을 들어오면 학원농장이라는 곳이 있다. 지금 이 사진을 찍는 곳.. 청보리밭이 펼쳐져 있어 윈도우 시작화면을 연상케 하는 이곳이 바로 학원농장이다. 봄에는 청보리밭이, 가을에는 메밀꽃이 펼쳐진다는 이곳은 거리는 멀지만 한번쯤 찾고 싶었던, 그래서 VJ특공대를 보면서 가슴설레기만 했던 곳이기도 하다.
해가 살짝 비켜간 녹지에는 자연광이 한없이 펼쳐져있고, 그 위를 차가운 바람이 날아다닌다. 비록 나와, 내 아내, 꿍꿍이는 춥지만 이런 경험을 어디서 하겠는가란 생각을 하니 보리밭이 아름답기 그지없다.
이곳에는 그 흔한 플래카드 한장 붙어있지 않다. 물론 중간중간 들어가지 말라는 표지판이 있기는 하지만 눈쌀을 찌뿌릴 정도는 아니다. 또, 어딜 찍어도 한산한 보리밭 풍광은 궂은 날씨에 이곳을 찾은 자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기도 하다.
슬슬 꿍꿍이도 바람에 적응이 되었는지 밖을 내다보며 좋아한다. 특히나 보릿잎 한개를 손에 쥐어줬더니 꼭 잡고는 놓질 않는다.
보리밭 구석구석에는 우리보다 먼저 다녀간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자국들이 남아 있었다. 옴폭 보리들이 쓰러져 앉을 수 있게 되어버린 곳.
그곳에 꿍꿍이를 앉혀 놓으니, 자기도 좋은가보다... 하긴 어디서 이런 푸르름을 보겠니?
사실 걸음만 걷더라도 데리고 다닐만한 곳 천지인데, 아직 의지할 것이 있어야만 서 있으니 좀 답답한 감도 있다. 너한테도 이 좋은 것들을 자꾸 보여주고 싶은데...
가도가도 보리.. 사진에 보는 것처럼 무지하게 넓지는 않지만, 생각보다는 넓다. 그리고 어딜가도 똑같은 보리때문에 금방 지루할 수도 있지만, 나름 위치위치마다 느낌이 다르다. 그냥 펼쳐져 있는 게 아니라 구릉 같은 곳에서 굴국이 있게 펼쳐진 터라 그런 것 같다.
아무튼 이 벌판을 저러고 다니느라 와이프는 팔목이 완전 고생했고 집에 돌아와서는 파스도배 후에 이 글을 쓰는 지금까지 자고 있다.(낮 2시반)
추위가 못버틸 정도까지 됐을 때 작은 이동 카페를 발견했다. 정확한 금액은 기억나지 않지만, 이건 바가지야라고 느낄 정도의 금액을 쥐어주고 나서야 반잔 정도의 커피를 얻을 수 있었다. 추러스는 너무 비싸서 사먹을 엄두도 못냈지만, 그 카페 옆에 있는 정자는 운치있었다.
이곳에 있는 거의 유일한 인공물.. 용문이다. 흔히들 등용문이라고 하는 이 것을 연못 한 가운데 설치해서 의미를 부여했는데 누군진 몰라도 머리는 잘 썼다.
날씨만 받쳐줬다면, 충분히 윈도우 바탕화면으로 사용되었을 만한 풍광을 꿍꿍이가 거닌다. 정확히는 서 있는다.
커피 한잔 후에 와이프도 나름대로 바람에 적응했는지 그 좋아하는 셀카도 찍기 시작한다. 그러나 저러나, 바람을 사진에 담을 수 없다는 건 무지하게 안타깝다. 저 평온함 뒤에는 폭풍이 있었는데 말이지..
바람속에서도, 엄마의 멱살을 잡거나, 목끈을 잡고 꿍꿍이를 부리더니 하품을 시작한 채은이를 안고는 이제 돌아갈 준비를 한다.
5시간을 걸려서 도착했는데 막상 1시간 있기가 쉽지 않다.
노란 유채꽃과 파란 보리밭. 최적의 조합이기는 한데 계속보니 질린다. 아름답기는 하다만.. 지루한건 지루한거다..
날씨만 좋았더라면 언제까지고 있어주겠지만, 그놈의 날씨가 뭔지.. 생각해보니 날씨 좋으면 여기서 도시락먹어도 참 좋을 것 같다.
이제 보니 꿍꿍이가 날 참 많이 닮은 것 같구나..라는 쓸데 없는 생각이 든다. 당연한거 아냐??!!
어쨌거나 아쉬움은 뒤로한채 이제 서울로 다시 올라가 보자.. 힘들더라도 여기서 자는건 무리야..라고 생각하고 돌아가려는데 축제장 한켠에 몽골텐트들이 눈에 들어온다.
그럼 그렇지.. 이런 곳이 없을리가 없다. 그래도 축제장 한 구석에 있어 보리밭 풍광을 해치지 않게 한건 참 잘 한 것 같다. 이곳 고창의 먹거리들과 특산품을 파는 것 같은데 그중에서 보리빵을 한번 사 보았다.
맛은.. 실망이다. 값은 6천원씩이나 하는 주제에 편의점 보리빵보다 맛이 없다. 100% 보리사용이라고 되어 있지만, 설탕이 엄청 들어간다. 와이프는 이를 두고 시골것들이 더한다는 격한 표현을 서슴치 않았다... 이런 건 좀 잘 좀 만들어주면 안되나??
아무튼 춥고, 힘들고, 거친 고창의 당일치기 여행을 마치고 서울로 올라왔다. 올라오는 길에 그래도 이곳 맛집 한곳은 가야 하지 않겠냐고 우겨서 해물 짬뽕 생활의 달인이 한다는 성송반점?이라는 곳을 찾았었는데 없어졌다. 선운산 앞으로 이동해서 본가라는 한정식집에서 끼니를 해결했는데, 이곳 예술이다. 바지락국밥과 비빔밥인데, 일단 양이 어마어마 하다. 다른 곳에서 쉽게 먹기 어려운 바지락이 그야말로 우걱우걱 먹을 수 있다. 이곳 선운사 앞에 스파도 조성되어 있는데 시설이 괜찮은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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