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을 지배한 텍스트 두가지가 그리스 신화와 성경이라는 사실은 아무도 부인할 수 없다. 디트리히 슈바니츠는 그의 저서 <교양>에서 그 두가지 배재하고 서양 문화를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못박은 바 있다. 그렇다면 동양에서는 어떨까. 아마 삼국지가 동양사를 지배한 문장이자 문화가 아닐까 싶다. 이상하게 삼국지만큼은 세대를 초월해서 내가 청소년일 때에도, 우리 아버지때에도 ,할아버지, 조선시대까지 널리 사랑을 받았고 수많은 게임과 영화가 지금가지 나오고 있는 걸 보면 앞으로도 삼국지의 인기는 사그라들것 같지 않다.
삼국지에서 파생된 서적도 그 양이 상당한데 제갈량 식 경영기법이라던지, 유비의 리더쉽, 조조의 처세술 등 캐릭터에 따른 자기계발서가 꽤나 많은 편이다. 발간된지가 조금 되기는 했지만 조조라는 인물에 대한 나름의 분석을 담은 이 책은 그런 책들 사이에서 조금더 특별하다. 이 책은 조조식의 마인드를 심거나 거창한 분석을 꾀하는 글이 아니다. 담담하게 조조가 남긴 글들과 기록되어 있는 역사적 사실만을 바탕으로 조조의 삶을 조명해 보는 정도의 서적이다.
이 책이 나왔을 때보다는 조조에 대한 평가가 많이 누그러들기는 했지만 아직까지 조조가 가지고 있는 간웅의 이미지는 쉽게 깨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이 책을 읽고 나면 조조의 인간적인 면이 훨씬 더 다가올 것임을 확신한다. 대부분의 역사적 인물 평가라는 것이 부족한 사료를 바탕으로 추측이 우선하는 일방통행으로 흐르기 마련이지만, 저자는 그 틈바구니를 꽤나 논리적으로 메꿔서 읽는이의 고개를 절로 끄덕이게 만든다.
앞서 잠깐 밝히기는 했지만 총 4부로 되어 있는 이 책은 각각의 챕터 내의 소단락마다 조조의 시와 글을 다룬다. 저자 이재하 박사가 <조조 시문연구>로 학위를 받은 걸 생각하면 우리는 최고의 전문가로부터 그 문학을 접하는 셈이다. 사실 삼국지연의와 정사삼국지가 뒤죽박죽한 상태에서의 정보보다는 그야말로 조조의 손에 쓰여진 글로부터 그의 심정과 삶을 유추하는 것이 훨씬 더 정확하지 않을까.
뿐만아니라 조조 주변에 얽힌 인물들의 이야기도 야사와 실화를 구분하여 풀어내어 지루하지 않게 하는 것도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이다. 또, 중간중간 재치스러운 표현과 유머가 곳곳에 숨어 있어 저자는 창작자로서의 재능도 보이고 있다. 자칫, 한시와 역사, 정사 삼국지로 인해 지루해 질 수도 있을 글들에 숨은 저자의 유머를 읽는 재미도 쏠쏠하다. 예를들면 한번 세운 공을 주구장창 자랑하다 불귀의 객이 되어버린 허유의 얘기를 전할 때 다음과 같은 비유를 쓰는데 그야말로 적절한 표현이다.
원래 공이란 완성된 요리와 비슷한 것이다. 그 요리를 만들기까지의 과정이 중요하고 맛있게 만들어졌으면 한번 먹는 것으로 끝이다. 천하에 둘도 없는 멋진 요리도 먹어버리면 그날로 그만인 것이다. 그리고 먹고 난 후에는 하루정도는 배부를 망정, 한 달이나 두 달 또는 평생동안 그 요리 생각만 할 수는 없다. (본문중에서)
그야말로 깨알같은 비유다. 그 외에도 조조의 인간적인 면이 많이 강조 되어 있어 읽다보면 조조가 더욱 인간답게 느겨지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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