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수레의 책읽기

[천재토끼 차상문] 인류를 부정하는 새로운 종의 등장.

슬슬살살 2013. 12. 23. 22:39

 토기 영장류를 다룬다고 해서 유치한 판타지물로 알았고, 뒷면의 박범신 작가의 추천의 글에서 무게감을 느꼈으며, 읽은 후에는 아무것도 모르게 되었다.

 

시작부터 평범을 거부한다. 인간어미의 배에서 나온 반인반수가 주인공이라니. 용맹한 호랑이도 아닌 심지어 토끼다. 표지의 그림을 토대로 떠올려보면 머리만 토끼인 인간이다. 징그럽거나 말도 안되는 건 둘째 치자. 이 토끼가 완전히 새로운 종이며 한 개체가 아니라는 점이 중요하다. 게다가 이 토끼 영장류는 인류의 존재를 부정한다. <제노사이드>의 다음 종도 아니고, <조의 영역>에 등장하는 다른 종의 진화도 아니다. 인간의 몸에서 나왔으되 인류를 부정하는 자. , 무인류주의자라 할 수 있겠다. 이 토끼인간을 데리고 작가는 20세기의 한국사를 훑는다. 전후 산업발전기를 배경으로 하는데, 그 때의 한국이란 정말이지 인류를 부정하고 싶게 만드는 국가다. 모든 것이 비정상이되 정상인 시절. 이 토끼인간의 삶은 그 부조리함을 통과한다. 한국 뿐 아니라, 미국으로의 유학을 통해 세계사적으로도 인류가 가지고 있는 문제점을 차상문의 입을 통해 잔혹한 해학으로 내뱉는다.

 

아직 먹고사는 것이 지상명제이던 시절, 토끼의 얼굴을 가진 영장류가 태어난다. 후에 천재 수학자가 되는 이 토끼영장류의 이름은 차상문. 양친 모두 명확한 인간이다. 다른 사람들은 신기하게 생각하기는 하지만, 과도하게 이상하게 여기지도 않는다. 별종이 나타났구나 하는 정도. 전 세계적인 현상이기도 한데, 강대국에서는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 이에 미국은 전 세계 토끼 영장류들을 장학생으로 초청해 교육을 시킨다. 베트남을 비롯해, 북한에서까지 초청받은 토끼 인간들은 한 곳에서 교육을 받는다. 외형만 토끼인 것이 아니라 성향도 인류와는 다르다. 이들은 시대에 순응하지도 않지만 과격한 행위를 하지도 하지 않는다. 그저 온순한 아나키스트일 뿐이다. 그러나 시대는 그들을 내버려 두지 않고 스스로도 기존 교육에 얽매여 있어 힘차게 벗어나지 못한다. 이념으로 분단된 양 국가의 토끼 영장류가 사랑을 이루지 못하는 것처럼. 차상문은 그가 가진 모든 지혜를 동원해 인류를 이해하고자 하지만 실패한 채 탁발승이 되어 버린다.

 

토끼는 무정부주의자, 아니 무인류주의자를 대변한다. 인류는 어쩔 수 없이 번식해 종을 이어가기는 하지만 그 삶은 양계장에서 사육되는 닭에 다름 아니다. 심지어 인류는 필요악이기까지 하다. 좌우 이념 논쟁을 배경에 깔기는 했지만, 이렇게 근본적인 문제의식은 인류 그 자체에 있다.

 인간이 누리는 모든 것은 피의 대가이니, 소가죽으로 만드는 야구공 하나부터 다이아몬드에 이르기까지, 저 잘난 인간적 자유로부터 지고지순의 생명에 이르기까지 예외란 있을 수 없다.

 

흔히 선진국일수록 인류애가 돈독하고 인간미가 넘칠 것으로 생각하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작가에 따르면 벨기에는 아프리카 다이아몬드 카르텔을 돌리느라 소년들을 사지로 몰아넣고 있으며, 타이어회사들 덕택에 라이베리아의 노동자들은 하루 10시간동안 고무나무 수액을 채취하고 있다. 스웨덴에서는 야생토끼를 수천마리씩 포획한다. 그 사체가 친환경 바이오 에너지로 쓰이는 건 농담인지, 진담인지 간담이 서늘하다. 간통을 한 여인에게 명예살인을 행하는 나라도 있으며 시에라리온인들이 평균수명 34세를 간신히 넘길 때, 미국인들은 야구를 보면서 비만을 걱정한다. 야구가 청소년의 꿈과 미래라 하지만 야구공 200개를 만들때마다 소가 한 마리씩 필요하다는건 모른다. 이 모든 부조리가 인류의 존재에서 비롯한다고 작가는 주장한다.  

 

인류의 존재가 전지구 관점에서 악이라는 논지는 많이 접해보았으나, 이렇게 극단적인 생각은 처음이다. 작가와 같은 생각을 가질 수도 있고 존중하지만 절대로 동의할 수는 없다. 인류의 존재가 아무리 해악일지라도, 종의 한 개채로서 인류를 반대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생명으로서의 지구를 바라보는 것이 인간이라는 종에 우선하지는 않는다. 다만, 작가가 제시한 것처럼 조금 조심하면서 사는 것. 그것이 해답이다. 작가 또한 인류의 모든 문제를 풀어놓았지만 정작 해답은 고민하고 번뇌하며 조심하는 것 뿐이라 말한다. 조심스러운 토끼 영장류의 선전포고를 어떻게 할 지는 각자의 몫이다.

내려갈 때만이라도 쿵쿵거리지 말아주세요, 부탁합니다.”

 

 

 


천재토끼 차상문

저자
김남일 지음
출판사
문학동네 | 2010-01-15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인간이…… 과연 진화의 종착지일까? 그로부터 여기 한 토끼인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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